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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Dec 23. 2021

고속버스 43번자리, 너 은근 매력있다?

별로인 자리도 막상 앉아보니 다른 게 보인다

연말까지 회계 자료를 제출하라는 회사 독촉에 부랴부랴 서울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8시 10분은 자리가 있는데 좀 늦을 것 같다. 8시는 단 한자리가 남아있다. 어느 버스 예매에서나 가장 마지막에 남는다는 그 악명높은 맨 뒷자리 가운데 좌석, 43번 자리다. 그래도 '한자리 남은게 어디냐 감사하다' 생각하며 이 자리를 예매했다.


출근날 아침, 따뜻한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다. 버스가 도착하자 휴대폰으로 예매내역 바코드를 찍고 긴 복도를 걸어 43번 자리에 앉았다. 왼쪽에는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오른 쪽에는 내 또래쯤 되보이는 여성 분이 앉아있었다. 43번 자리는 특히 두툼한 외투를 입는 겨울에는 양옆에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좁고 불편하다. 버스가 도착해 내릴 때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 단점 중 하나다. 그래서 45명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선택받는 인기 없는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오늘 오랜만에 앉아보는 43번 자리를 편견없이 관찰해보기로 했다. 우선 안전 밸트를 매고 자리 앉아보니, 마치 버스가 내 것인듯 한 기분이 든다. 탁 트인 시야 덕에 버스 앞 차량이 어떤 건지도 보인다. 평소 차체가 높은 SUV를 좋아하는 나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팔은 다소 불편하지만 다리만큼은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다리를 쭉쭉 뻗어도, 들어도 걸리는게 하나 없다. 큰 키때문에 늘 다리 구부리는 게 문제인 사람들에겐 최상의 자리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는 얼마나 많은 승객들이 자고 있나도 대충 다 보인다. 아침시간, 많은 승객들의 고개가 삐뚤삐뚤하다. 간혹 방향을 잘 못잡고 복도로 고개를 내미는 승객도 보인다. 목이 꺽일새라 위태해보이지만 깊은 잠에 빠졌는지 미동도 없다. 이렇게 다양한 승객들의 뒷통수(?)를 관찰해보는 것도 호기심 많은 나에겐 장점으로 다가온다.



비록 남들이 제일 늦게 선택하는 가장 별로인 자리라고 해도, 그게 나와  맞으면 나에게만큼은 좋은 자리다. 사람도 비슷하다. 남들이  별로라 해도 나와  맞고 내가 좋으면 나에겐 ‘최고 된다. ‘뭐야. 하나남은 마지막 옵션이잖아?’라고 생각하고 처다볼 생각 안하지 말고 어떤 자리이든 사람이든, 일단 한번 살펴볼 일이다. 다리가 그렇게 긴건 아니어도 직접 타보고나니 43 좌석이 은근한 내스타일임을 알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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