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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Jan 03. 2022

시할머니와 코로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 힘내세요.

나의 시할머니, 즉 남편의 할머니는 올해로 83세가 되셨다. 할머니는 남편을 어릴 때 키워주셨다. 남편과 할머니는 매우 가까운 사이인데, 그래서 그런지 나도 할머니가 편하다.


남편과 결혼해 이듬해 아이가 생겼고 출산일이 다가왔다. 당시 내가 선택한 몸조리 장소는 조리원도 아니요 친정도 아닌 시할머니 댁이었다. 친정은 부산이라 추운 겨울 아기를 안고 가기엔 너무 멀었고 어머님은 일을 하셨다. 10명가량의 손주들을 키운 할머니가 산모 몸조리의 베테랑이라는 가족들의 증언(?)에 따라 시할머니 댁에 3주간 머물렀다.


그때가 벌써 5년 전이다. 당시 할머니는 77세였지만 나이보다 훨씬 생기 있고 건강하셨다. 세끼 밥과 미역국을 손수 챙겨주셨고 새벽 4시~5시면 일어나 방바닥을 걸레질을 하셨다.


시할아버지는 남편이 8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일찍이 혼자가 되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노인정에서만큼은 인싸였다. 코로나 전, 할머니가 다니시는 집 앞 노인정에 아기와 두어 번 간 적이 있다. 할머니는 노인정에서 ‘젊은이들(60,70대)이 설거지도 하고 그렇게 해야 늙은이들(80대 이상)이 편하다’며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자 활발하셨던 할머니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사람들 만나기 좋아하는 할머니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노인정도 못 가고 교회 권사님들과 교회도 못 가신다. 집에만 홀로 있게 되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할머니 조그만 눈이 더 작아 보이고 둥그런 어깨가 더 내려앉아 보인다. 드나드는 이들이 있긴 하겠지만 예전처럼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던 정겨운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2021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에 모시고 가려고 남편과 할머니 댁에 들렀다. 귀찮고 힘들다며 안 가겠다는 할머니를 설득해 꾸역꾸역 모시고 갔다. 예배가 끝나고 할머니 댁에 다시 모셔다 드리면서 말했다.

“할머니 자주 못 와서 미안해요. 이제 더 자주 올게.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해요”

“응 그려”

“응 할머니 따뜻하게 해서 푹 자요.”

“그려 조심히 가”



문득, 내게는 이제 ‘노멀’이 된 코로나가 80이 넘은 할머니에겐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고 어려운 몹쓸 병’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할머니에겐 근처에 사는 다섯 명의 자녀, 10명 가까이 되는 손주들이 있지만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진짜 고독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가 수그러들고 어르신들이 편하게 나다닐 수 있는 안전한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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