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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Feb 20. 2022

코로나19, 제가 직접 만나봤습니다

세 식구 코로나 감염 일기

일요일 저녁,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목 상태가 심상치 않다.


“여보 나 목이 너무 아파. 이거 좀 쎄한데..?”


다음날 오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고 저녁이 되어서는 39도 가까운 고열과 근육통 오한이 시작됐다.

사태의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남편이 안방 큰 매트를 거실로 옮겼다. 나만 방에서 자고 아이와 남편은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밤새 극심한 오한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아픈 와중에 내 머리에 드는 단어는 단 하나였으니, ‘코로나’ 그것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코로나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했지만 계속 음성이 나왔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 따로 잤던 남편과 아이에게도 바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경을 헤맨 내 몰골을 본 남편은 빨리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패딩 하나 챙겨 입고 근처 보건소로 갔다. 10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온다는 뉴스답게, 보건소는 긴급 항원검사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남편이 줄을 서고 나는 차에서 대기했다. 내 차례가 되어 긴급 항원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음성. 진짜 심한 독감에 걸린 건가.. 독감이 이렇게 아프다고?  


병원에서 약을 받고 링거를 하나 맞았다. 약을 먹고 버티며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그날 밤 남편의 상태가 악화됐고 자가 키트에서 나와 남편은 양성 반응을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양성 결과가 나온 자가 키트 검사 결과를 지퍼백에 담아 보건소를 찾았다. 이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양성 결과가 있어서 바로 PCR 테스트를 받았다. 하루가 지난 뒤 나와 남편 아이의 코로나 양성 확진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나-남편-아이 순서로 코로나에 감염이 됐고 회복은 나와 아이가 먼저 했다. 남편은 고열과 오한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아파했다. 결국 재택 치료 병원과 원격진료 끝에 남편은 병원으로 가 링거를 밎았다.


코로나 확진 3일 차, 어제 링거를 맞고 온 남편의 증상이 확실히 호전되었다. 걱정했던 아이는 고열 외에는 큰 증상 없이 바로 회복했고 나도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했다.


문제는 격리다. 당장 월요일부터 유치원도 못 보내는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더 휴가를 써야 할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가 우리 집 세 식구를 덮쳤다. 30대인 우리 부부가 겪기에도 상당히 아팠는데 어르신들이 걸리면 정말 위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코로나가 우리 가족, 그리고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2년 넘도록 괴롭히고 있다니. 남편과 나는 입을 모아 코로나를 ‘몹쓸 병’으로 정의했다.


한번 세게 아프고 나니 건강 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무의식적 반응이 내 머리를 스친다. 그동안 먼지 쌓인 채 방치해둔 요가매트를 펼쳤다. 하나 둘하나 둘 조금씩 몸을 움직여본다. ‘그래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 해. 내가 아프면 아이도 못 돌보는 거야.’


혼자였으면  아픈 기운을   오래 유지하며 이불속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뒤늦게 아프면서 나라도 빨리 정신을 차려야 했다. 따끈한 밥을 해서 먹이고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며 몹쓸 바이러스를 몰아내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어느 정도 고비는 지났다. 이제 세 식구의 슬기로운 격리생활만 남았다. 이 모든 남은 시간도 무사히 지나 기길. 누군가에겐 더 위급하고 극심한 아픔이 될 수 있는 이 코로나가 제발 좀 끝나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만나본 코로나는 ‘완전 완전 매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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