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식구 코로나 감염 일기
일요일 저녁,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목 상태가 심상치 않다.
“여보 나 목이 너무 아파. 이거 좀 쎄한데..?”
다음날 오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고 저녁이 되어서는 39도 가까운 고열과 근육통 오한이 시작됐다.
사태의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남편이 안방 큰 매트를 거실로 옮겼다. 나만 방에서 자고 아이와 남편은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밤새 극심한 오한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아픈 와중에 내 머리에 드는 단어는 단 하나였으니, ‘코로나’ 그것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코로나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했지만 계속 음성이 나왔다. 다음날 아침, 거실에 따로 잤던 남편과 아이에게도 바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경을 헤맨 내 몰골을 본 남편은 빨리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패딩 하나 챙겨 입고 근처 보건소로 갔다. 10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온다는 뉴스답게, 보건소는 긴급 항원검사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남편이 줄을 서고 나는 차에서 대기했다. 내 차례가 되어 긴급 항원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음성. 진짜 심한 독감에 걸린 건가.. 독감이 이렇게 아프다고?
병원에서 약을 받고 링거를 하나 맞았다. 약을 먹고 버티며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그날 밤 남편의 상태가 악화됐고 자가 키트에서 나와 남편은 양성 반응을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양성 결과가 나온 자가 키트 검사 결과를 지퍼백에 담아 보건소를 찾았다. 이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양성 결과가 있어서 바로 PCR 테스트를 받았다. 하루가 지난 뒤 나와 남편 아이의 코로나 양성 확진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나-남편-아이 순서로 코로나에 감염이 됐고 회복은 나와 아이가 먼저 했다. 남편은 고열과 오한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아파했다. 결국 재택 치료 병원과 원격진료 끝에 남편은 병원으로 가 링거를 밎았다.
코로나 확진 3일 차, 어제 링거를 맞고 온 남편의 증상이 확실히 호전되었다. 걱정했던 아이는 고열 외에는 큰 증상 없이 바로 회복했고 나도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했다.
문제는 격리다. 당장 월요일부터 유치원도 못 보내는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더 휴가를 써야 할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가 우리 집 세 식구를 덮쳤다. 30대인 우리 부부가 겪기에도 상당히 아팠는데 어르신들이 걸리면 정말 위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코로나가 우리 가족, 그리고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2년 넘도록 괴롭히고 있다니. 남편과 나는 입을 모아 코로나를 ‘몹쓸 병’으로 정의했다.
한번 세게 아프고 나니 건강 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무의식적 반응이 내 머리를 스친다. 그동안 먼지 쌓인 채 방치해둔 요가매트를 펼쳤다. 하나 둘하나 둘 조금씩 몸을 움직여본다. ‘그래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 해. 내가 아프면 아이도 못 돌보는 거야.’
혼자였으면 이 아픈 기운을 좀 더 오래 유지하며 이불속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뒤늦게 아프면서 나라도 빨리 정신을 차려야 했다. 따끈한 밥을 해서 먹이고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며 몹쓸 바이러스를 몰아내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어느 정도 고비는 지났다. 이제 세 식구의 슬기로운 격리생활만 남았다. 이 모든 남은 시간도 무사히 지나 기길. 누군가에겐 더 위급하고 극심한 아픔이 될 수 있는 이 코로나가 제발 좀 끝나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만나본 코로나는 ‘완전 완전 매운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