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었던 것을 드러냈을 때 오는 해방감
2차 성징이 시작되던 중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구를 닮았는지 유독 큰 골반. 친척으로부터 ‘넌 엉덩이가 왜 이렇게 크냐’는 말을 들어봤을 정도로 내 골반은 넓은 편이다.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는 내 골반에 큰 불편함(?)을 못 느꼈지만 20살이 넘어 대학교와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이내 감추고 싶은 것이 되었다. 특히 20대 거의 모두를 군대에서 여군으로 보내면서 타인(특히 남성)의 시선에 평가받는 것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9년 전 군대를 떠나 민간인이 되었지만 사복을 입을 땐 최대한 골반이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을 찾아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 나는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를 살아가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여전히 내가 내 ‘골반’으로부터는 자유하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 일이 있었다.
며칠 전 남편과 아이쇼핑을 하다가 청바지 브랜드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청바지를 한번 입어보게 됐다. 나는 허리가 높은 하이웨이스트를 골랐고 남편은 내게 골반이 훤히 보이는 로우 라이즈 스타일을 추천했다.
‘난 이런 거 싫은데..’
‘한번 입어봐. 여본 이런 게 잘 어울려’
‘내가 이런 디자인은 안 입어봐서 이상하지 않을까?’
‘아냐 한번 입어봐’
그렇게 두 가지 서로 다른 디자인의 청바지를 입어봤다. 역시나, 골반에 걸쳐지는 로우 라이즈 청바지를 입으니 너무 어색하고 내 엉덩이만 보이는 것 같아 당장 벗고 싶었다.
‘골반이 너무 커 보여’
‘남들은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 골반인데 드러내고 다녀야지. 이 디자인이 훨씬 낫네. 이거 사’
남편은 내게 로우 라이즈 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사라고 사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내 콤플렉스에 붙잡혀 어떤 옷도 살 수 없었다.
그 뒤로 집에 와 남편이 해준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남들은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내 소중한 신체인데, 난 왜 가리기에 급급했을까… 그렇게 내 골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이자, 남편 말대로 내가 꽤 근사한 골반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옷장 구석에 고이 잠들어 있던 (인터넷으로 사놓고 입지 않은) 로우 라이즈 스타일의 청바지를 꺼내 입어봤다. 요리 저리 거울을 살펴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싫게만 보이고 숨기고만 싶던 골반이 꽤나 예뻐 보이는 게 아닌가.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38년 인생을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내 골반을 예뻐해주지 못했는데,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 진짜 사랑스러워 보이는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길이도 길어 더더욱 입지 않고 처박아둔 로우 라이즈 청바지. 수선집에서 딱 맞게 길이를 맞춰 다시 입어보니 한 껏 기분이 좋아지면서 ‘아 이게 진정한 해방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1. 내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한 시선으로 본다
2. 내가 가진 것들에 좋은 점을 먼저 찾는다
3. 콤플렉스를 나만의 특별한 매력으로 인식한다
5.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은 내가 되는 것에 집중한다
6. 감추지말고 내 콤플렉스였던 것을 자유롭게 드러내본다
7. 해방감을 맛본다
그래 나는 오늘, 큰 골반이라는 콤플렉스에서
진짜로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