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숱 많은 자의 애환

한인 헤어샵에서 머리를 잘랐다

by 짠맛토커

나는 숱이 많다.

한마디로 숱 부자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한결같이 그래 왔다.


출산 후 한동안은 자고 일어나면 베개 밑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도 했지만 내 머리숱은 이상하게도 줄지 않았다. 빠진 만큼 그 자리에 더 굵은 모발이 자라나는 건지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그것도 복이라며 나이 들면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내 나이 서른여섯, 아직까지는 좋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숱이 적당히 풍성하게 많으면 좋은 것이겠지만, 이게 적당량을 넘어 과하게 많아버리면 그에 따르는 불편한 점들도 존재한다.


숱이 (지나치게) 많아 슬픈 이유


1. 우선 어떤 스타일링을 해도 머리가 커 보인다. 예전 미스코리아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그 사자머리를, 나는 언제 어디서나 연출할 수 있다. 쇼트커트을 해도, 단발을 해도, 긴 머리를 해도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숱 때문에 늘 머리가 버섯처럼 붕 떠 보인다. (그래서 가장 흔하게 밟게 되는 수순은 매직 또는 볼륨매직으로 차분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2. 머리가 무겁다. 숱도 많은데 굵기도 굵어서 일단 무게가 많이 나간다. 머리가 길면 길수록 더 무거워진다. 머리가 길 때는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서면서 "이 머리카락들을 다 자르면 300그램은 덜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긴다.


3. 덥다. 머리를 다 풀고 있자면 정말이지 덥다. 특히 나같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의 경우엔 남들보다 체감온도가 1도는 더 상승하는 기분이 든다. (만약 추위를 잘 느끼는 사람이라면 몸에 자체 난방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4. 머리를 묶고 장시간 있다 보면 두피가 아프다. 특히 나는 스타일링을 잘할 줄도 모르고 목 뒤에 더운 기분이 싫어서 잠잘 때 빼고 거의 대부분 머리를 묶고 있는데, 이게 매일 반복되다 보면 두피가 따가울 때가 있다. 머리를 높게, 단단하게 묶을수록 더 아프다.


5. 샴푸와 린스가 많이 든다. 이건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명백한 단점이다. 나는 샴푸나 린스 등을 펑펑 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머리숱이 많다 보니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의 양을 세네 번 정도 사용해야 머리 전체를 골고루 감을 수 있게 된다. 극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스님이나 머리숱이 많이 없으신 남성분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양을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에도 나쁘다.


6. 말리는데만 20~30분이 소요된다. 20~30분은 드라이기 사용 기준 시간이다. 목욕탕에 가면 동전 넣고 드라이기를 사용하는 기계가 있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내가 다니던 목욕탕은 100원 넣으면 60초를 준다. 60초는 내 머리숱의 50분의 1도 말리지 못하는 시간이다. 그냥 안 말리고 말지.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더운 여름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드라이기로 20분가량 바람을 쐬면 다시 더워진다. 더워서 샤워를 했는데 다시 더워지는 아이러니. 그래서 나는 바로 외출해야 하는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드라이기는 5분 내로만 사용하고 자연 건조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연 건조 옵션을 선택할 경우 아침 8시에 머리를 감았다면 오후 2시가 되어도 머리 안 쪽 깊숙한 곳은 여전히 젖어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7. 미용실에 가면 남들보다 두 세배 이상 오래 걸린다. 남들이 30분 걸리는 커트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걸리고 남들이 2시간 하는 펌은 4시간~5시간이 걸린다. 확실히, 무조건, 뭘 하든 두 배 이상 오래 걸린다. 볼륨 매직 같은 펌을 한 번 하려고 하면 그날 하루는 그냥 비워야 한다. 어느 샵을 가든 보통 1명의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이 시작하다가 후반부에는 반드시 다른 선생님이 한 분 더 붙는다. 양쪽에서 내 머리 피느라 정신이 없다. 펴도 펴도 끝이 없다. 정말 볼륨 매직 같은 펌은 큰 마음먹고 가야 한다. 그리고 괜히 헤어디자이너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특히 내 머리를 드리이 하시는 헤어 디자이너분들을 볼 때. 그분들의 팔뚝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모발도 굵어서 말도 잘 안 듣는다. 힘을 엄청 줘야 하는데, 그걸 몇십 분씩 하시는 분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최근 들어 극심한 탈모 증상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남편은 내가 숱이 많아서 불편한 점들을 열거하면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거 나 좀 주지."


남편도 자꾸만 적어지는 머리숱에 스트레스를 받긴 하나보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진짜 내 머리카락을 줄 수만 있다면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줄 텐데. 쓰던 물건을 나눔 하듯이 내 머리카락도 좀 덜어서 나눔 하고 싶다.



영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난 3월 말 모든 비필수 업종의 영업장이 문을 닫았고 7월 초가 되어서야 헤어 숍들이 문을 열었다. 그 사이 영국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을 주체할 수 없는 머리카락을 다루느라 애를 먹었다.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들은 이 3개월이 넘는 시간을 그냥 기다리지 못했다. 5월의 어느 날, 나는 자꾸만 길어져가는 머리카락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가슴선을 향해 치닫는 머리카락을 단발 길이로 싹둑 잘라버렸다.


조금 삐뚤삐둘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밖에 나갈 일이 없었으니까. 숱을 제대로 치지 못하니까 너무 무거웠다. 답답한 건 잘 참지 못하는지라 그냥 잘라버린 것. 다행히 영국에 올 때 머리 자르는 가위를 챙겨 왔다. 하지만 남의 머리를 잘라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머리를 자르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거사를 치르고 나서 드디어 7월이 되자 대부분의 헤어숍들이 문을 열었다. 비싼 가격에 웬만하면 그냥 기르려고 했지만, 최근 들어 자꾸 묶고만 있다 보니 두피가 너무 아파와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여기서 영국인들이 운영하는 헤어숍에 갔다간 동양인의 엄청난 숱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어왔던 터라, 한인 샵을 검색했다. 이 곳 저곳 알아보다가 집 근처 한인 부부가 운영하는 헤어숍이 오후 5시까지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찾아갔다.


숱이 많아서 불편하고 아프고 어쩌고 저쩌고 편안하게 다 이야기하고(한국분이 아니었으면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이 따른다.) 숏컷으로 잘라달라고 했다. 하지만 헤어 디자이너 분께서 이 숱으로 숏컷을 하게 되면 감당이 안되니 뒷머리를 짧게 치는 단발로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난 최대한 뭐든 다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머리카락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이신 헤어 디자이너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싹둑싹둑.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의 쾌감이란!


4시에 시작한 내 머리는 5시 40분에 끝이 났다. 감고, 자르고, 드라이하고 다시 숱 치고. 나름의 긴 여정이었다.

자르고 나니 너무 가볍고 시원해서 나의 머리카락들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얻은 듯 했다. 진작에 자를걸. (물론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지만.) 오늘 급하게 시간을 내서 머리를 자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숱이 너무 없어서 애환이신 분들도 나의 남편을 비롯해서 참 많으시겠지만, 이렇게 머리숱이 지나치게 많아버려도 애환이 따른다. 아마도 나는 평생에 긴 머리는 하기 힘들 것 같다.

드라이만 20분 넘게 해주셔서 한껏 차분해진 머리! 가볍다 가벼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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