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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Oct 14. 2020

북한 정은이와 남한 정은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남한 정은이의 이야기

내 이름은 ‘백 정은’이다.


‘정은’이라는 이름은 꽤 흔해서,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정은이라는 또 다른 친구가 한 두 명쯤 있곤 했다. 다행히 성은 특이해서 성과 이름이 완전히 같은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정은이(나)는 무럭무럭 자라 성인이 됐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 영문 이름을 작성해야 했고 그때부터 나는 jungeun Baek이라는 이라는 영어 스펠링을 사용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내 이름이 문제 된 적은 없었다. 문제는 내가 영국으로 넘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팀에는 한국인들만 있어서(국적을 변경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 내 이름에 대한 오해나 어려움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내가 수시로 마주하는 외국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름부터가 쉽지 않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각종 트레이닝이나 미팅이 줌으로만 실시되면서, 외국인들은 더욱더 내 이름 부르기를 어려워했다.


졍근?? 영은? 젼근? 이름을 제대로  불러서 미안해.  이름 어떻게 발음하니?”


이게 내 이름에 대한 외국인들의 절대적인 반응이다.

처음에는 “정 - 은- “이라고 또박또박 말해줬다. 그런데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내 이름에 좀 더 쉽게 접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내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이 있었으니, 나보다 한 살 많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다. 김정은은 영문 스펠링 Kim jong un을 사용하지만, 어쨌든 한국어로 보면 같은 이름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북한(north korea) 김정은 알지? 나는 남한(south korea) 정은이야. 대신 성은 백이야. 그래서 내 이름은 백 정은이야.”


내 설명을 들은 외국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되묻는다.


김정은이랑 너랑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거야?”

아니, 전혀 없고 그냥 이름만 똑같아. 기억하기 쉽지?”


이렇게 설명하니 내 이름을 정근이나 영근으로 발음하는 일도 줄어들게 됐다.


자기 소개 동영상에 내가 넣은 이미지



우리 부모세대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외국인이 쉽게 부를 수 있을까 까지 고민했을 리 만무하지만, 요즘 같은 글로벌 사회에선 한 번쯤 고민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 역시도 아이를 낳고 난 뒤 이름을 지을 때 외국인들이 부르기에도 괜찮은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말 다행히도 내 아이의 이름 후찬 (hu-chan)은 외국인들도 쉽게 발음하는 이름 중 하나다.


예전엔 브리아나(briana)라는 영어 이름을 따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진짜 내 이름같이 느껴지진 않아서 영국에 오면서부터는 그냥 내 한국 이름만 쭉 쓰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내 한국 이름 발음하기를 아주 어려워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 세계인이 아는 북한의 김정은 때문에 조금은 편한 방법으로(?) 내 이름을 소개하며 살고 있다.


비록 내 이름이 외국인에겐 발음하기 어렵더라도, 또 비록 내 이름이 한국에선 흔한 이름 중 하나라 할지라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내 이름을 평생 잘 가꾸며 살아갈 생각이다.


-남한 정은이의 이름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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