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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Nov 03. 2020

여보 숨소리에서 니코틴 냄새가 난다?

개코 아내 덕에 죄 못 짓는 남편 이야기

10월 내내 남편도 바쁘고 나도 바빴다.


나는 보통 아이가 깨는 시간인 아침 7시에 맞춰 기상한다. 함께 아침을 먹고 놀다가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은 업무 시작 시간 전까지 시간을 보낸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내가 방으로 들어가고 자고 있던 남편이 거실로 나온다. 남편은 주로 아이가 잠든 밤부터 시작해 새벽 3시, 4시 넘도록 작업을 한다. 그래서 늘 아침엔 비몽사몽이지만 내가 일을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교대를 한다. 그렇게 하루 일이 끝나면 오후 5시 정도가 된다. 저녁밥을 해 먹고 씻고 나면 아이와 나는 잠을 자고 남편은 학업을 시작한다.


영국에 오면서부터 거의 이 패턴으로 지내고 있는 우리 부부. 나는 나대로 일찍 자야 다음날 일을 할 수 있고, 남편은 남편대로 나와 아이가 잠든 밤-새벽 시간에 작업을 해야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엊그제 저녁엔 아이와 남편, 내가 침대에 드러누워 뒹굴거리며 놀고 있었다. 오랜만에 남편한테 찹쌀떡처럼 달라붙은 채 누워있던 나는 남편 코 밑에서 나는 숨소리를 맡다가 문득 수상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여보? 여보 숨소리에서 니코틴 냄새가 난다? 아직도 이게 안 빠졌나?”


남편은 나에게 처음 고백하던 날,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만 끊겠다며 먼저 말했던 사람이다. (예전에 남편은 줄담배를 피워대는 골초였다고 한다.) 결혼 후 남편은 아주 가끔씩 담배를 찾곤 했지만 한 두 개비 피고는 속이 쓰려 제대로 피지도 못했었다.

그렇게 거의 6년이 다돼 가도록 금연을 한 사람 콧구멍에서 니코틴 냄새가 난다? 뭔가 수상했다.

내가 니코틴 냄새가 난다는 질문을 하자 남편이 0.001초 정도 멈칫하는 순간을 나는 기가 막히게도 낚아챘다.


언제 폈어?”

“크크 크큭 아니 진짜 여보 3일 전에 딱 두 개비 폈어 진짜 이틀도 넘었다니까??”

“내놔”

“없어”

“버렸어?”

“크크크크 우체통에 있어”

“뭐? 그럼 거기 넣어놓고 몰래몰래 핀거야? 처음 아니지!”

“진찌 이게 처음이야 여보 요즘에 작업이랑 너무 스트레스받고 손발에 땀나고. 나 맨날 발 하루에도 몇 번씩 씻잖아.”


나는 남편 옆에 누워 찰싹 달라붙은 채 취조를 이어갔다. 남편은 나의 놀라운 탐정 능력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어떻게 이걸 알아채나 정말 이 여자 대단하다' 싶은 표정으로 실실 웃고 있었다.


“내가 엊그제 우편함 열었을 때 아무것도 없던데?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

“진짜야 여보 내가 엊그제 폈나 그랬다니까.”

“오늘 핀거 아니고?”

“아니야. 진짜 아니라니까. 이틀 된 니코틴 이라니까.”

“크크크. 솔직히 내가 니코틴 냄새난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소름 돋았어."

"크크크크 크. 내 코가 개코인 거 알면서 담배를 피워? 얼마 주고 샀어?"

"10파운드"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며) 미쳤어 미쳤어! 자꾸 돈 달라고 하더니 담배나 사고 정말!"

"여보 근데 나 진짜 요새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작업이 너무 안돼. 자꾸 땀나고 막 그래."


마주 잡고 있던 남편의 손에서는 진짜로 땀이 나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

"모르겠어. 잘 안돼.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야지 말을."

"... 그래도 나는 가장인데."

"아~~ 그럼 나도 힘들고 그러면 그냥 우체통에 담배 넣어놓고 피면 되겠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말을 하라고 말을"



졸업을 두 달 여 남겨놓고 있는 남편이 매일 밤마다 제출해야 하는 과제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오고 있었다. 그 순간, 아침에 일어나 남편 책상을 확인했을 때 먹고 치우지 않은 맥주 캔이 하나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났던 게 떠올랐다. 나는 나대로 피곤하고 지치니까 일찍 자기에 바빴는데, 어둡고 긴긴밤을 혼자 씨름하며 지냈을 남편이 그제야 떠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을 안고 등을 도닥였다.


"미안해. 여보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


옆에서 놀던 아이는 내가 우니까 놀란 모양이다.


"엄마 왜?"

"후찬아, 우리가 아빠가 힘든데 너무 몰라줬나 봐. 우리가 아빠 힘내라고 기도하자."


아이와 나, 남편은 침대 위에 동그랗게 앉아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그동안 서로의 힘듦을 챙겨주지 못했던 걸 고백하고, 앞으로 우리의 길을 이끌어주기 길, 남편이 담대히 학업을 잘 마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길 기도했다.




어느덧 시간은 밤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오늘만큼은 일찍 자자고 말했다.


"여보, 오늘 하루는 여보도 푹 잤으면 좋겠어. 푹 자고 피로 풀고 다시 의쌰의쌰 해보자."

"그래, 오늘은 진짜 일찍 자야겠다."

"사람한테 잠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휴식을 잘 못하면 사람이 이상해진다니까?"

"그래. 자자. 후찬아 우리 같이 자자!"


아이 눈엔 이미 잠이 가득하다.

"응. 아빠도 코자."

"아빠는 엄마 때문에 살 수가 있어."


남편은 이 말을 남기고 2분 안에 잠에 빠졌다.

아이의 숨소리와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나는 두 남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빠졌다. 무심하고 무딘 성격의 내가, 코만큼은 예민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예민한 코로 니코틴 냄새를 맡았고, 그 덕에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으니까 말이다. 앞으로는 탐정처럼 서로의 힘듦을 찾지 말고, 더 자주 마음을 나누는 우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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