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레옹 Oct 12. 2020

오늘의 재생곡 : 나이키 슈즈

남편이 무한반복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 

오늘은 줌으로 하는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12:30분. 두 번째 세션이 끝나고 1시간 쉬는 시간이다.


"휴~"


거실로 나왔다. 남편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하고 있다. 내 시야에 들어온 남편의 모니터에는 반스 신발들로 가득하다.


"쇼핑해?"

"아, 아까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그 사람이 신은게 이뻐서 한 번 찾아보는 거야."

"하여간 신발 좋아해. 여보 제일 사고 싶은 게 뭐야? 딱 한 개만 골라봐."

"아니야. 아니야. 그냥 보는 건데?"


그 사이 아이가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른다. 서둘러 빵과 사과를 내어 준다.


"아삭. 아삭"


아이의 조그마한 입술로 사과를 배어무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는 배경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한참 뒤 깨달았으니, 그 소리는 남편의 노트북을 타고 흘러 나오고 있었다.


"여보, 이거 누구 노래야?"

"응? 빈지노."

"아. 그래? 아 맞다. 여보 우리 물이랑 사야하니까 인터넷 주문하자."

"응"


영국 수돗물은 석회가 많아서 마시는 물은 사먹고 있다. 돌아서면 다 떨어지는 생수. 주기적으로 주문을 해줘야 한다. 온라인 장바구니에 물을 비롯해 필요한 생필품과 음식들을 담고 있던 남편이 이제는 배경 음악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회색 도시 속 그녀가 신은 민트색 나이키 슈즈~"

"그녀의 자유로운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


남편 옆에 앉아 무심코 커피를 마시던 나는 갑자기 그의 나이키 슈즈 노랫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는 계속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라고 외치고 있다. 남편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크크크크"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여보 나이키 신발 사고 싶지?"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크크크크크 아 웃겨. 지금 신발 사고 싶어서 그 노래 계속 무한 반복하는거야?"

"나이키 슈즈~ 나이키 슈즈~ 크크크"


신발이 사고 싶어서 계속 신발 노래를 부르는 깜찍한 남편이라니!

남편 덕분에 오늘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신발을 진짜 좋아한다. 옷도 좋아하고 청바지도 좋아하고 모자도 좋아한다. 쉽게 요약하자면 몸에 걸치는 건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밖에 잘 나갈 일이 없다는 이유로 쇼핑도 잘 안했다. 물론 생활비 쓰다보면 쇼핑을 위한 돈은 늘 뒷전이기도 하다. 문득 남편이 1~2주 전에 자신의 나이키 신발을 가리키며 한 말이 떠오른다.


"와 진짜 오래 신긴 했다. 바닥이 닳았네."

"그거 한 삼년 되지 않았어?"

"그치. 나는 참 신발을 깨끗이 신어. 그치?"

"그러게."


3년째 신고 있는 남편의 나이키 슈즈


남편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자신의 나이키 신발이 닳아가고 있음을 어필했는데.... 무디디 무딘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나서 망정이지, 남편이 이야기해도 내가 모르고 넘어가는 게 꽤 많을 거다.


늘 생활비가 빠듯해 뭐 사고 싶다고 말도 잘 안하는 착한 남편. 다가오는 남편 생일엔 예쁜 나이키 슈즈 하나를 선물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뚠뚠이 꽈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