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말 뒤에 숨겨진 아이의 진짜 문장을 통역하는 법
마흔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제게 가장 큰 안전 기지는 '엄마'입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숨통이 트이는데,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일까요?
어느 날부턴가 제 아이가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약속도 잘 지키고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지낸다던 아이였는데, 현관문만 열고 들어오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짜증과 화를 쏟아내고, 소리를 지르다 급기야 물건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지요. 그야말로 '금쪽이'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일하는 엄마라 애착이 부족해서일까? 내가 뭘 잘못 가르친 걸까? 아이의 뾰족한 말과 행동에 마음이 쿡쿡 찔릴 때마다 제 안에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걸까?' 섭섭함은 분노로, 분노는 다시 자책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집에서 폭발하는 이유는 엄마와의 애착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엄마를 완벽한 '안전기지'로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보울비는 '안전기지(Secure Base)'를 말합니다. 아이가 외부 세계를 탐색하다가 불안하거나 힘들 때 돌아와 위안을 얻고 재충전하는 심리적 보금자리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만 가면을 벗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합니다. 밖에서 "착한 아이"로 지내기 위해 감정 주머니 속에 켜켜이 쌓아온 피로와 긴장을, 가장 신뢰하는 부모 앞에서 와르르 쏟아내는 것이지요.
이 현상은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자아 고갈 이론(Ego Depletion)'으로도 설명됩니다. 우리의 의지력과 통제력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 배터리처럼 소모되는 한정된 에너지입니다. 온종일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돌아온 우리가 집에서 방전되는 것처럼, 아이들 역시 밖에서 규칙을 지키고 감정을 조절하느라 이미 에너지 총량을 다 써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인 '전두엽'이 한창 공사 중인 시기입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김붕년 교수의 표현처럼 4~7세는 '사춘기 예고편'과 같습니다. 에너지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느라 뇌가 심하게 흔들리는 시기이지요. 에너지는 고갈되었고 뇌는 아직 미숙하니, 아이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가장 안전한 기지인 엄마라는 품 안에서 마음껏 터뜨리는 것입니다.
결국 아이가 저에게 던진 물건과 뾰족한 말들은 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엄마, 나 오늘 밖에서 너무 애썼어요. 이제 에너지가 하나도 없어요.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간절한 신호였습니다.
아이의 에너지가 방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저는 더 이상 아이의 행동을 '버릇없음'으로 오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아이의 서툰 감정을 읽어주는 '감정통역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가 폭발할 때 "왜 그래!"라고 맞서기보다, "오늘 밖에서 에너지를 참 많이 쓰고 왔구나. 마음 배터리가 다 되었네"라고 먼저 알아차려 주는 것. 그것이 아이의 전두엽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고, 우리 집을 진정한 안전 기지로 만드는 첫걸음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