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0.5초의 시선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소란스러운 교실에서 아이들을 사로잡는 저만의 비결이 있습니다. 큰 소리로 "조용히 해!"라고 외치는 대신, 나직이 노래를 부르며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고 온기를 교환합니다. 소통할 때도 항상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가만히 눈을 맞춥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제 곁으로 다가와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엄마 같은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 한 번이 훨씬 강력한 '초대장'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된 저는 어땠을까요? "사랑해", "잘했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면서도, 정작 제 시선은 설거지통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몸은 곁에 있었지만, 제 눈빛의 온도는 아이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에서 식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대화'라고 하면 입으로 내뱉는 언어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메라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머지 93%는 표정, 시선, 목소리의 톤,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차지하지요.
특히 정서적 안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말 한마디보다 '나를 바라보는 눈길의 온도'와 '어깨에 닿는 손길의 무게'가 훨씬 더 직접적인 사랑의 증거가 됩니다. 아이는 엄마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구나'라는 자존감의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윤지회 작가의 그림책 <방긋 아기씨>를 보면 이 진리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주인공 왕비님은 육아가 서툴고 불안한 엄마입니다. 아기씨를 행복하게 해주려 값비싼 옷을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우스꽝스러운 공연을 열어도 아기씨는 통 웃지 않습니다. 왕비님이 아이를 걱정하느라 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기씨는 엄마인 왕비님이 환하게 웃어주는 얼굴을 보고서야 처음으로 '방긋' 웃음을 터뜨립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들은 늘 교사에게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여러 아이를 돌보느라 자칫 놓치기 쉬운 그 찰나의 시선과 마주할 때면, 저는 그 아이만을 위한 비밀스러운 애정 표현을 보냅니다. 윙크를 해주거나,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손가락 하트를 꺼내 보이는 식이지요. 그 조용한 몸짓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온 마음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둘째를 키우며 다시 무너졌던 시기, 저에게 가장 먼저 사라진 것 역시 아이를 향한 '미소'와 '눈맞춤'이었습니다. 지친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고, 아이의 부름은 제게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새벽 시간, 나를 채우는 루틴을 다시 세우고 감사일기를 쓰며 제 안의 온도를 1도씩 높여가자 다시 아이의 예쁜 속눈썹과 반짝이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저를 다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비로소 아이를 향한 눈맞춤에도 따뜻한 온기가 실린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아이와 눈을 맞춥니다. 거창한 교육 이론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제 눈동자 속에 비친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소중하고 빛나는지 온몸으로 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입술 끝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를 흐르는 이 따뜻한 '온도' 속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