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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靜天) 에세이 7] 무료함을 극복하는 용기

일상의 무료함의 가치를 찾고 그 무료함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

by 한정구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직장인들이 인사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요즘 뭐 재미있는 일 없어?”, “재미있는 일이 있겠냐?”, “너도 그렇구나”, “월급쟁이가 그렇지 뭐…”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직장인들이 느끼는 허무함과 공허함은 거짓말이 아니다.



40대 초반인 필자는 31살부터 35살까지 기억이 거의 없다. 기억상실증도, 치매도 아니다. 억울하다. 소중한 5년의 삶을 빼앗긴 기분이다.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 일에 파묻혀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출근하고, 기계같이 일하고, 눈치보고, 스트레스 받고, 퇴근하던 생활의 반복이었다. 재미없는 일상이었기 때문에 기억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없었던 것이다.


뇌 과학에 따르면 과학은 인간이 가진 뇌의 정보저장 용량의 한계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정보가 뇌에 잘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까먹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오늘 아침에 먹은 것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뇌 속에 있는 기억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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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


재미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갑자기 특별한 이벤트, 사건이 생긴다면 그 것들이 기억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갑자기 떠난 여행이, 가슴 떨리게 만드는 거래처 직원의 등장이, 소중한 내 아이의 탄생이 열쇠가 될 수 있다. 소소하게는 퇴근 길에 평소와 다른 길이나 방법으로 집에 돌아왔다면 역시 열쇠가 될 수 있다.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한 ‘용기’를 가진다면 조금은 삶이 재미있고 윤택해질 수 있겠다.


필자에게는 아이가 태어난 것과 늦은 공부를 시작한 것이 열쇠였다. 물론 변화와 도전은 또 다른 어려움이 따랐지만, 무료한 일상에 재미를 더하고 추억을 안겨주었다.



무료한 일상의 가치를 찾아


그렇다면 무료한 일상은 나쁜 것일까?


작사가 김이나가 쓴 에세이 <보통의 언어들>에서 무료한 일상(루틴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준다. 그녀는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루틴함이 사실은 무료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토록 가지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많은 직장인들은 반복되는 무료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어렵게 취업했고, 많은 대학생들은 반복되는 무료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 어렵게 공부했다. 그녀가 옳았다. 무료한 일상, 루틴함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 생각이 철저하게 깨졌다.


무료한 일상, 루틴함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임을 인정했으니 이제 소소한 일상의 이벤트로 재미를 조금 더해야겠다. 새로운 취미, 새로운 만남, 새로운 배움을 찾아봐야겠다. 도전하지 않더라도 찾아보는 과정 역시 재미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필자의 글이 일상의 소소한 이벤트가 되길 감히 기대해본다.



글ㅣ정천(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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