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가 있는 그대에게 '극복 에너지'를 전하는 이야기
오래 전 필자에게는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다. 바로 목소리였다. 남자다움의 상징인 굵은 중저음이 아닌, 가늘고 여린 목소리를 가진 필자의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 한문 수업시간이 두려웠다. 한문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한문 선생님께서 주신 상처 때문이었다. 첫 수업시간, 선생님은 교과서를 읽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몇 주 후 교과서를 읽고 자리에 앉은 나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란 말이야. 그래야 목소리가 남자답게 굵어지지.”
그래서 필자는 산은 멀어서 못가고, 대신 운동장 구석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이미 변성기가 지난 목소리는 굵어질 턱이 없었다. 오히려 음역만 넓어졌다. 덕분에 훗날 잠시 밴드생활을 했을 때 도움이 됐다.
어느 날 선생님은 교과서를 읽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나를 보더니 그냥 앉으라고 하셨다. 남자답지 못한 내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하셨다.
목소리 스트레스가 가장 컸을 때는 군대였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 그 병장은 점호시간이 끝나면 괜히 내 앞에 서서 손가락질 하며 ‘당장 목소리 바꿔’라고 소리 질렀다.
군 제대 후에는 목소리 스트레스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변수가 생겼다. 바로 하리수였다. 하리수는 음지에 숨어있던 트랜스젠더들에게 용기를 준 혁명전사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당시 트랜드젠더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리수는 목소리, 행동, 외모, 성격 등에서 중성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다시 말해 성 정체성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비웃는 고유명사이기도 했다.
어느 날 강의실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나를 보고 두 여학생이 수근거렸다.
“저 남학생 하리수 같아…”
실어증이 찾아왔다. 누구보다도 대화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입을 닫았다. 하고 싶은 말들은 입을 떠나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만 멤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실어증이 우울증이 될까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압구정 어느 카페를 찾았다. 이 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대학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군대가기 전 잠깐 만난 적이 있는 선배였다. 3년 만에 만난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저를 기억 못하시겠지만, 그때 거기서 만난 정천입니다.”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선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얼굴이 기억이 안나. 그런데 너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알겠다.”
사전적 의미로 개성(個性, Individuality)이란 독립적인 존재인 개체를 다른 개체와 구별할 수 있게 하는 독자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개성이란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그 선배 말이 끝나자 내 머릿속에서 깨달음의 종이 울렸다. 내 생각이 틀렸다. 내가 그토록 싫었던 내 목소리는 콤플렉스가 아니라 개성이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 난 누가 목소리를 비웃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통해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하고 더 당당하게 표현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여리게 들리지는 않지만 지금 내 목소리는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함께 잘 살고 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I Feel Pretty(감독 에비 콘, 주연 에이미 슈머)>는 뚱뚱한 몸매의 주인공이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자신을 매력 넘치는 여자로 오해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영화다. 사고 후 외모에서 비롯한(?) 자신감이 넘치자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독특한 소재의 영화이다.
혹시 가슴 아픈 콤플렉스가 있다면 필자처럼 그 콤플렉스를 개성으로 바꿔볼 수 있다는 용기를 드리고 싶다. 영화 <I Feel Pretty> 주인공처럼 자신감으로 콤플렉스를 덮을 수도 있다. 사정도 모르는 비현실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소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있을 법한 소재로 만든 이야기라면 그 있을 법한 이야기가 여러분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콤플렉스 때문에 두려운 여러분에게 극복의 에너지를 전하며…
글ㅣ정천(靜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