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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靜天) 에세이 12]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방법

by 한정구

과연 정해진 운명은 있는 것인가?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에는 역대 모든 영화,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수양대군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은 수양대군(이정재 役)이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役)에게 한 바로 이 말일 것이다.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1.jpg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가 밀라노를 방문했다.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잔에 차를 따르고 있는 레스토랑 주인을 본 국왕은 자신을 닮은 그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나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가?”


“사실 평소에 폐하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닮은 점은 외모 뿐만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1844년 3월 14일 태어났고, 마거리타라는 이름의 부인을 두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날 국왕은 왕위에 올랐고 레스토랑 주인은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엄청난 우연이군. 내 다음에 이 곳에 왔을 때 자네에게 꼭 선물을 주고 싶네.”


얼마 후 국왕이 레스토랑을 다시 방문했다. 국왕은 주인을 찾았지만 몇 시간 전 총기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쉬움에 돌아가던 길에 국왕은 무정부주의자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같은 날 태어난 레스토랑 주인과 움베르토 국왕은, 같은 날 총이라는 같은 방법으로 사망했다.


2.jpg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사주가 같은 사람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일까?


사주 : 사람의 난 해[年]·달[月]·날[日]·시(時)를 간지(干支)로 계산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이자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신화로 기억되고 있다. 다음 내용은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들은, 정주영 회장과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다.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그저 재미로 들어주길 바란다.)


3.jpg (사진 출처 : 사진 출처 : http://www.asan-chungjuyung.com)


정주영 회장과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정주영 회장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인 것이다. 지금부터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사람을 A로 부르기로 한다.


A 역시 정주영 회장과 같이 사업가였다. 그러나 A와 정주영 회장은 사업 규모가 달랐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조선, 건설, 중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기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A는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업가였으며,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운명이 다르다면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장환경이다. 당연히 성장환경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성장환경이 절대적 변수는 될 수 없다. 잘 알려졌듯이 정주영 회장의 성장환경은 가난으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에 성장환경 덕분에 정주영 회장이 큰 사업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가 아니라면 남은 것은 소프트웨어다. 같은 사주를 타고 났지만 정주영 회장과 A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정주영 회장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불굴의 의지, 지치지 않는 사고방식, 저돌적인 추진력 등. 정주영 회장과 A는 같은 사주를 타고났지만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A는 가게를 키워야 했을 때 비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망설였을지 모른다. 반면 정주영 회장은 허허벌판인 울산 동구에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세계 최대의 조선소를 세웠다. A는 매출이 떨어졌을 때 한숨을 쉬었을 지 모른다. 반면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 전신인 <아도서비스> 공장이 화재로 불탔을 때 오히려 기회로 삼아 현대자동차를 일궈냈다. (물론 A에 대한 이야기는 필자의 상상이다.)


정주영 회장과 A가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음에도 다른 인생을 산 것은 바로 생각의 차이였을 것이다.


많은 현인들은 말한다. 운명은 개척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좀 억울하다. 전생에 우주를 구하지 못해서인지 우리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 금수저를 물고 타고나지 못해 억울하고, 그래서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 인생은 너무 고통스럽다. 솔직히 타고나는 것은 있는 건지, 개척할 수는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생각이라도 바꿔보기로 하자. 힘들어만 하지 말고 걱정만 하지 말고 모두 잘 될 거라 생각이라도 해보기로 하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 갑자기 떠오른다.


글ㅣ정천(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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