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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천 한정구 Mar 16. 2021

[세상보는 이야기 4] 내 속엔 납이 너무도 많아 ♬

납이 없는 무연휘발유 탄생에 얽힌 이야기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자동차 내연기관은 정확한 시점에 연료를 분사하고 불꽃을 붙여주면, 연료가 폭발하면서 동력을 전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만약 연료 분사나 불꽃 점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내연기관 안에서는 망치로 두드리는 '탕탕' 하는 소리가 난다. 이것을 노킹(knocking)이라고 한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엔진 때를 벗겨준다는 <불스원샷> 같은 연료첨가제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료첨가제는 엔진에 묻어있는 그을음 같은 때를 벗겨주고, 연료 안에 들어있는 수분 제거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앞에서 설명한 노킹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은 이 노킹에 얽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진 출처 : 불스원샷 홈페이지)



노킹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토머스 미즐리의 노력


1920년 미국 기계기술자이자 화학자인 토머스 미즐리는 자동차 엔진의 노킹 해결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자동차들은 노킹 때문에 연비가 좋지 않았다. 연비가 좋지 않다는 말은 엔진이 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때는 석유 매장량이 곧 바닥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노킹은 자동차 산업발전에 큰 문제였다.


토미스 미즐리는 노킹의 원인을 연료에서 찾고 있었다. 그는 자동차 연료에 '어떤' 물질을 첨가하면 노킹현상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좀 어이없지만 붉은 색만 첨가하면 노킹현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름에 잘 녹고 붉은 빛을 띠는 요오드를 휘발유에 넣는다.


어떻게 되었을까? 어이없게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이렇게 어이없이 탄생한 노킹방지 신기술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용화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요오드가 너무 비샀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즐리와 그의 동료들은 요오드를 대체할 새로운 물질을 찾기 위해 수 년 동안 수없이 화학실험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결방법을 찾았다.


바로 납이었다.



유연휘발유의 탄생(Leaded Gasoline, 가연가솔린)


완벽한 수퍼맨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등장한다. 바로 <크립토나이트>다. 크립토나이트는 수퍼맨의 고향 크립톤(Crypton)에서 온 녹색 결정물질로서, 수퍼맨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특이한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런데 수퍼맨을 무력화 할 수 있는 크립토나이트 조차 납에 둘러 쌓이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납은 그만큼 무서운 물질이다.




1923년 수많은 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납을 첨가한 휘발유가 판매된다. 느려터진 자동차는 납이 들어간 휘발유 덕분에 속도를 냈고, 자동차 산업은 끝없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인정(?)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납이 들어있는 유연휘발유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더 빠른, 더 멋진 자동차가 팔려나갈수록 인류의 몸 속에는 점점 더 많은 납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립토나이트 앞에서 수퍼맨은 힘을 잃지만, 납 앞에서 사람은 힘을 잃지 않는다. 차라리 힘을 잃으면 피하면 되는데, 납은 분해되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한다. 공기 속에서, 땅 속에서, 사람 몸 속에서 납은 분해되지 않고 계속 쌓인다. 납중독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한다. 차라리 바로 영향을 주는 크립토나이트가 몇 천 배는 낫다.



유연휘발유의 퇴출


미국 지구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클레어 패터슨. 그는 지구 나이 측정을 위한 연구가 실패하는 이유를 찾던 중 대기 중에 있는 납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조사하는 과정에서 192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납 성분이 별로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23년?? 어디선가 많이 본 년도이다. 그렇다. 바로 유연휘발유가 판매되기 시작한 해가 1923년이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클레어 패터슨과 환경운동가들의 오랜 노력 끝에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고, 1986년 비로소 미국에서는 유연휘발유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유연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정말 다행이다. 만약 지금까지 유연휘발유가 계속 사용되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종했거나, 영화 <X-Man>처럼 돌연변이로 진화했을지 모른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슬프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유연휘발유가 금지된 1992년 이전 태어난 세대다. 그래서 몸 속에 얼마나 축적되어 있을지 모를 납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글 | 정천(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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