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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천 한정구 Nov 05. 2020

[세상보는 이야기 1] 상조와 소비자

공정거래, 소비자분쟁해결기준, 현명한 소비자

2008년 봄으로 기억된다. 결혼하고 처음맞은 아내의 할아버님 기일을 맞아 처가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릴 겸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제사에 참여했다. 제사를 마치고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집안어르신 한 분께서 서류를 내미시면서 말씀하셨다.


 

“상조에 가입하지 않겠나? 매월 35,000원씩 10년만 내면 된다네. 원래 35,000원인데 이번 달이 프로모션 기간이라 30,000원만 내면 된다네.” 



장인어른 앞에서 상조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이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집안 어르신께서 퇴임 후 하시는 사업이고, 장인어른 역시 오래 전 가입하셨다며 추천하신데다가 금액 역시 부담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흔쾌히 서명을 했다.


4년이 흐른 2013년 어느 날 갑자기 장인어르신께서 전화를 해오셨다. 


“우리 가입한 상조보험인지 서비스인지 있잖아. 그거 형님께서 얼른 해약하라고 하시네. 그래서 내가 해약하겠다고 회사에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계속해서 안받더군. 오늘에서야 통화가 됐는데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매월 30,000원씩 87회 납입을 하셔서 입금하신 금액은 2,610,000원입니다. 여기에 기본 사업비와 각종 수수료를 공제하면 1,000,000원을 환급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특별히 1,200,000원을 환급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군.” 


장인어른께서는 2,610,000원이나 냈는데 절반도 안 되는 1,200,000원만 환급된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나 계셨지만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어 맏사위인 내게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아버님 일단 제가 해결할 테니 아버님은 저만 믿고 기다려주세요.” 


모든 분쟁과 협상에서는 나의 패를 보여주기 보다는 상대방 측의 패를 예측하고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알려주신 전화번호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3일 정도 매일 20번 정도 시도 끝에 통화할 수 있었으나 그들의 주장은 단호했다. 그리고 그들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모든 보험상품은 중도해지를 하는 경우 사업비를 공제하고 환급한다. 이것은 보험의 당연한 상식이다. 여기서 상식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의미한다.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면 누구에게나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합리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이야기 하는 내용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50%가 넘는 사업비를 떼는 회사라면 분명 상조보험이 필요한 시점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계약서, 약관 등 어느 문서에도 그러한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는 고객인 나와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이었다. 



<약관법>
제5조(약관의 해석) ①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되어야 하며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②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소비자기본법 예하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별표 2-18. 상조상품의 환급액 계산표 



회사 측 주장을 들었으니 이제 나의 주장을 펼 때가 되었기에 다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예상대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 휴가를 내고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주소로 찾아갔다. 오피스 빌딩이 많은 곳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전혀 반대로 찾아간 곳은 일반 주택가였다. 몇 번을 물어 찾아간 곳은 다세대주택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간판도 없었고 회사가 있을 것이라는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아 우편함을 뒤져보니 그 회사 앞으로 온 우편물들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더니 경리업무를 보는 젊은 여자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맞았고, 다시 한참을 지나서야 회의 중이라던 본부장이 나타났다.


“귀사와 저, 저의 장인어른이 체결한 계약서와 약관을 가져왔습니다. 전화로 하신 이야기의 근거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근거가 없다면 다시 말해 약관에 그러한 내용이 없다면 회사에 유리하게 약관을 해석하고 계시기 때문에 약관법을 위반하고 계십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소비자기본법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비자기본법 예하에 있는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보면 상조업에 해당하는 환급액 계산표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걸 보시죠. 만약 말씀하신 대로 환급액을 집행하신다면 귀사는 국가에서 입법절차를 통해서 정해진 법령고시를 위반하게 됩니다.” 


결국 나는 장인어른께 당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납입한 2,610,000원 중에서 2,144,250원(환급률 82.2%) 을 되찾아 왔다. 그리고 한동안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자랑스러운 사위로 사랑을 받았다.



최근 5년간 상조업체 등록 현황 ⓒ공정위 자료



공정거래라고 하면 보통 부당한 공동행위, 불공정 거래행위와 같은 시장질서를 더럽히는 행위들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공정거래의 기본은 사업자 보호와 소비자 보호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으며 사실 사업자 보호 역시 억울한 소비자가 발생하거나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공정거래는 태생적인 가치가 다소 바래져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갑질로 인한 영세상인들과 소상공인들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정작 소비자들이 흘린, 또 흘리고 있는 눈물은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 


분명 이 순간에도 부실한 상조업체는 상조가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는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직접 가입해서 매월 몇 만원의 돈을 내고 있는 어르신들도 계실지도 모른다.



글 | 정천 (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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