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을터뷰 Jul 07. 2020

사람과 사람, 예술과 예술 사이

중간지점

중간지점에서 열린 전시 <유령의 뺨>.




어느 단계에 가면 물고기라는 실의 모양이 나오는데 그걸 잘 풀면 다시 전 단계로 돌아가서 게임을 지속할 수 있고 잘못 풀어져서 어그러지면 판이 깨져요. 콜렉티브는 항상 그 지점을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


중간지점

김기정, 김옥정, 박소현, 이은지


jungganjijeom.com



/


중간지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이곳은 원래 이은지 작가의 작업실이었어요. 이곳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의 전시 공간이 됐어요. 아티스트런 스페이스가 이런 식으로 많이 생기더라고요. 공간 이름을 중간지점이라 지은 이유는 우선 을지로 사무실 사이에 끼어 있는 공간의 위치를 생각했고, 그다음으로 생각한 게 저희 위치예요.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해서 확 나아갈 수도 없고 숨어 있을 수도 없는 중간적인 상태를 반영했어요.


전시를 기획하는 방향도 중간지점이라는 이름과 관련 있는 것 같아요.


개관전이 이 공간을 시작한 배경과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업을 하면 작품이 쌓이잖아요. 이 작품이 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은 계속해야 하는데 마음의 짐과 눈에 보이는 짐이 쌓이는 거예요. 우리가 작업을 보관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했고, 관련해서 전시를 기획했어요. 보관할 때의 축소된 형태와 전시장에서 확장된 형태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상태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공간형’이라는 전시 공간에서는 확장된 형태로, 중간지점에서는 이걸 다시 축소해서 보관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럼 동시에 두 공간에서 전시가 열린 건가요?


네, 먼저 공간형에서 전시를 보고 중간지점으로 오는 것을 의도했어요. 저희는 이때부터 연계 전시를 생각했어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면 이미 완결된 단단한 형태의 작품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 이면에 있는 과정이나 전시에 포함되지 못한 부산물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우리의 상태나 상황에서 중간지점이라는 말이 시작되긴 했지만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 자체도 과정을 드러내면서 작업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고, 올해 2인전을 하는 것도 그런 거예요. 둘 사이에 또 다른 지점들.


‘중간지점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중간지점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전에 전시 프로그램의 방향을 좀 더 말씀드리면 계속 중간지점을 찾는 시도예요. 3월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라는 전시를 했어요. 3인전이었는데 처음부터 3인전을 의도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 챌린지 같은 방식으로 어떤 한 작가를 정하고 그 작가가 어떤 작가를 또 정하고, 이렇게 사람을 모아서 전시를 한 거예요. 주어진 공간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공간을 점유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렇게 섭외를 시작했는데 세 명으로 그친 거예요. 그 상황 자체도 웃겼어요. 저희는 더 많은 작가가 모일 거로 생각했는데 세 명에서 끝났어요.


중간지점에서 제시한 주제나 방향이 없었던 건가요?


주제가 없었고, 그래서 첫 작가가 누구인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전시는 서로 조율해서 잘 됐고, 전시 안에서 작가가 완전히 분리되거나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닌 이들이 어떻게 균형을 맞춰 나가는가에 대한 전시였어요. 올해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중간지점 프로젝트는 작년 말에 공모를 받아서 올해 진행하는 2인전 프로젝트예요. 4월, 5월, 7월, 12월 이렇게 네 팀이 전시해요. 그리고 나머지 달에는 저희 네 명도 다 작가이기 때문에 저희 작품으로 2인전을 함께 진행해서 올 한 해가 꾸려질 예정이에요.


네 분이 운영을 어떻게 하세요? 각자의 역할이 있나요?


처음에는 각자의 역할이 없다가 점차 생기기 시작했는데 기정 님은 공간 관리나 다른 외부 사람들이랑 만나는 걸 담당하고 은지 님은 기획이나 디자인을 맡기도 하고, 옥정 님은 홍보 담당, SNS 관리. 소현 님은 총무이시고 물품 구비 같은 걸 하고.



중간지점을 운영하는 4명의 작가. 왼쪽부터 박소현, 김옥정, 이은지, 김기정.



어떻게 마음이 맞아서 함께하시게 됐는지 궁금해요.


저희가 넷이서 운영한다고 하면 이 질문을 많이 해 주세요. 저희는 같은 학교를 나왔고, 그냥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자연스러웠던 거네요.


각자의 역할을 정하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자리를 잘 잡았어요. 공간 운영을 함께하기도 하지만 동료 작가이기도 해서 이야기가 잘 통해요.


네 분이서 함께한 전시도 있었나요?


작년 8월에 저희 네 명이 하나의 콜렉티브가 되어 전시한 적이 있어요. 다른 전시 공간에서 진행했는데,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중간지점을 어떻게 지속하는지에 관한 전시였어요. 실뜨기라는 게 최소한 두 명의 사람이 왔다갔다하면서 해야 하는 놀이거든요. 어느 단계에 가면 물고기라는 실의 모양이 나오는데 그걸 잘 풀면 다시 전 단계로 돌아가서 게임을 지속할 수 있고 잘못 풀어져서 어그러지면 판이 깨져요. 콜렉티브는 항상 그 지점을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대화와 갈등을 쳇바퀴처럼 반복하면서 그 관계를 지속하는 것 같고. 그 전시 이후로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올해 테마를 2인 혹은 그 이상의 프로젝트로 잡았어요.


그럼 지원하시는 분들은 보통 팀으로 지원하나요? 아니면 개인이 지원하고 중간지점에서 이어주는 방식인가요?


이번에는 보통 같은 학교를 나와서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12월 같은 경우는 부부 작가예요. 한 명, 한 명의 작가이지만 한집에서 같이 사는 부부로서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각자 독자적인 본인의 철학이나 스타일이 있을 텐데 어떤 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생각보다 작가들이 2인전을 많이 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이 공간을 만든 이유와 비슷할 것 같아요. 혼자 계속 고군분투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메이트가 중요해지고 그런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9월에는 우리가 전공한 장르를 녹여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 보자고 해서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신체가 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작가를 모아서 단체전을 시도해 보려고 해요. 시작은 동양화에 대한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고, 매년 9월마다 진행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여기서 영화 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3개월에 한 번 핑퐁무빙클럽이라는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2018년 11월에 한 전시가 영화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온 거였고, 그 영화를 프로그램으로 가져와서 한 게 출발점이었어요. 그때 전시하셨던 분이 계속 진행을 해 주고 계시고, 영화를 하나 정하고 그 영화와 관련된 체험 콘텐츠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인사이드 아웃> 영화를 가지고 비즈 팔찌 만들기를 했고,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으로 크리스마스 용품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 모임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저희 공간이 작다 보니 6명 정도 선착순 모집을 받아서 하고 있어요.

@ping_pong_moving_club


영화 선정은 어떻게 하세요? 주로 자아를 돌아보거나 표현할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하나요?


영화 선정은 저희 4명도 있지만 디자이너로 일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주도적으로 영화를 선정하고 저희와 회의를 통해서 결정해요. 그분이 핑퐁무빙클럽을 같이 끌어오고 있고 영화 선정도 대체로 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걸 가져오는 것 같아요.


알차게 공간을 운영하시는 것 같아요.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서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요. 아, 저희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부터 전시 전경 아카이브를 시작했고, 지금은 인터뷰 영상도 찍어요. 함께하는 작가들과 다음에 또 보자는 의미로 씨유레이터 아티스트라는 콘셉트로 만들고 있고, 그래서 마지막 인사가 ‘다음에 또 봐요’예요. 저희가 공간 안에서 동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공간 자체가 크지 않아서 동선을 강조한 영상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걸어 다니는 것까지 아카이브를 해 놓으면 중간지점의 성격과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날 것 같아서 그렇게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중간지점의 장기적인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네 명이서 시작했지만 점점 더 한 명 한 명 오는 느낌이거든요.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집합을 만든다든지 중간에서 더 많은 시도를 해나가고 싶어요. 그럼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시의 방향이나 기획 단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실 때, 이 공간이 멈춰 있지 않고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러다 중간지점이 광장이 되는 거 아닌가요? (웃음)


그럼 좋겠어요. 중간지점에서 만나!


을지로에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원룸

전시 보러 갔었는데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비공식적인 것도 많은 것 같고. 예를 들면 예술가들이 모여서 글 쓰는 모임도 거기서 진행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매년 회원을 모집하고 그분들만 모여서 진행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결산처럼 발표하는 자리가 있어요. 그곳 채광도 너무 좋아요.


몬트스튜디오

을지로 4가 쪽에 유리 작가가 운영하는 공간이에요. 북 바인딩 수업을 진행해요.








취재 길수아, 홍주희

글 & 편집 길수아

매거진의 이전글 필름, 그리고 관계를 맺는 현상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