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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을터뷰 Jun 16. 2020

자유로운 사유를 위한 소극장

을지공간

을지공간의 객석. 공연이 없을 때는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 수 있다.



저희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동시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상업성과 예술성 어느 한쪽이 더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 적절한 좌표가 있겠죠. 자유롭게 사유하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을지공간

서울 중구 창경궁로5길 5 4층


김태형 대표




을지공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을지공간은 연극 작업을 위해서 모인 예술가들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구성원이 같이 작품을 만들고 무대를 올리는 소극장의 이름도 을지공간이고, 소극장과 집단의 이름이 같아요. 작년에 자체 기획을 서너 번 정도 했고, 2020년에는 더 많이 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 20일에 <모파상에 대한 고백>이라는 2인극을 하고, 후속 작품을 준비 중입니다.


그럼 대표님도 연극을 해 오신 거고요.


네, 저는 연기를 해 왔는데 지금은 주로 기획과 제작을 하는 거죠.


이곳에서 연극 외에도 영화 상영회를 진행했고, 직접 와 보니 책도 되게 많아서 꼭 복합 문화 공간 같아요.


이틀에 걸쳐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태원>을 상영한 적이 있어요. 여성 감독 독립영화 시리즈로 두 달에 한 번 상영회를 열려고 해요. 또 대관한 팀 중에서 판소리 하는 팀도 있었고, 무용 공연도 가끔 하고요. 공간을 빌려드린 거라 저희가 기획한 건 아니에요. 연극을 중심으로 모이지만 공연이라는 매체가 대사가 없는 연극도 있고, 몸을 많이 쓰는 연극도 있고, 음악을 하는 연극도 있고 그 경계선이 항상 명확하지는 않아요.


영화나 감독을 선정할 때 대표님의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글쎄요. 특별한 기준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붙이자면 시대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큰 영화보다는 많이 앉아도 50명이니까 보통 영화 극장에서 상영되기 어려운 영화를 상영하고, 여성 감독의 영화를 시리즈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거고. 위에 온더무브라는 루프탑 바하고 같이 공동 기획을 했어요. 여기는 핵심 멤버가 남자 3명이지만 위에 루프탑 바는 저하고 여성 한 분이 동업하는 거거든요. 레스토랑 겸 와인 바인데,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요.


4층에는 소극장 을지공간이, 5층에는 와인 바 온더무브가 있다.


시대성이라고 하는 게 되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겠네요. 보통 연극 극장은 공연만 올리는 것 같은데, 이곳은 커튼을 치고 젖힐 수 있어서 그런지 공간의 제약이 없는 것 같아요.


원래 객석부터 무대까지 다 커튼이었는데, 무대 쪽은 완전 박스 형태로 만들자고 해서 공사를 한 거예요. 저희가 사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공사했는데, 공사가 끝난 주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그래서 2월부터 4월까지 잡혀 있던 대관이 다 취소됐죠.


타격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그렇죠. 객석 쪽에는 커튼이 있어서 공연할 때는 완전히 사각형 형태의 박스였다가 공연이 없을 때는 커튼을 젖혀요. 그럼 책장이 있고, 통풍할 수 있는 창문도 있고요.


창문을 열 수 있는 극장이라니.


4층이라서 그렇죠.


을지공간이 생긴 지 오래되지는 않았더라고요. 2018년 중반에 들어오신 거죠?


네, 2018년 중반에 처음 자체 기획을 해서 공연을 올리고, 저희가 각자 다른 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이 공간에만 있는 건 아니라서 작년까지는 자체 기획을 많이 하지 못하고 대관 위주로 운영했습니다. 이번 기획은 을지공간에서 100% 기획한 겁니다.


총 몇 분이 계세요?


여기서 상주한다고 생각하는 인원은 3명이에요. 매일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일을 꾸미는 사람들이요. 같이 참여하는 예술가들을 다하면 수십 명 돼요.


위치를 을지로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을지로의 공간적 특색이 연극 작업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릴 때 외국 생활을 많이 했는데, 을지로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요. 몇백 년의 역사가 아니라 60년대 말부터 불과 50년 사이 이런 생태계가 빠른 시간에 조성됐어요. 을지로가 독특하다는 것보다 대한민국이, 서울이 얼마나 빨리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을지로만 크게 변하지 않은 거죠. 여기서 뭔가 예술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위치도 좋고,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좋아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옷 만드는 일을 하셔서 외국 생활하기 전인 7-80년대에 을지로에 다녔어요. 다시 와서 보는데 제 기억 속 을지로와 똑같은 거예요. 2년 반 전부터 을지로 2가, 3가 쪽을 알아봤어요. 그런데 건물의 층고가 별로 높지 않아서 구하기 어려웠어요. 규모도 최소 30석 이상 나와야 하고, 화장실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을지로 4가까지 보게 된 거예요.


을지공간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오프브로드웨이'라는 용어를 봤어요. '오프대학로'의 느낌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으셨다고요.


대안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동시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이고요. 상업성과 예술성 어느 한쪽이 더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 적절한 좌표가 있겠죠. 항상 거길 찾아가는. 여기 모여서 자유롭게 사유하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을지로에 지금의 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변화가 있었나요?


저희는 제대로 된 시작은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이때까지는 시작 단계였는데, 지금 어느 정도 동력이 붙어 있고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과라는 말은 좀 이상하네요. 끝이 있다는 거니까.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사실 아름답다고 하는 게 주관적일 수 있다고 봐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겠죠. 그리고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때에 따라서 어렵고 힘들고 무거운 건데, 삶의 무게를 승화시키며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을지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많아요. 협업을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연극을 올리는 것 외에도 연극제를 해 보고 싶어요. 을지공간에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선정해서 1인극 페스티벌을 하는 거예요. 이 무대에서 5분 내지 10분 동안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뭐든지 하는 거죠. 그게 모노드라마일 수도 있고, 무용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작품을 보지만 그게 하나로 놓고 보면 공통된 주제이고, 느슨한 통일성 있는 작품일 수 있는 거죠.


<모파상에 대한 고백> 이후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몇 가지 있는데요. 연극제를 해볼 생각이고, 여성 감독 시리즈도 계속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프랑스 작품인데 장 주네의 <하녀들>을, 폭력적이고 그런 작품인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각색해서 만들어 보려고 해요. 다큐멘터리 연극이라는 건 하나의 레이어를 하나 더 끼워 넣는 건데, 하나의 양식을 예로 들면 연출가가 디렉팅 하는 게 작품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하녀들>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고, 많은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항상 논란이 많거든요. 각색하는 감독마다 다르고. 그래서 이 부분을 해석하는 과정과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지금 을지공간에서 진행하는 모임이 있나요?


희극 읽기 모임이 있어요.


연극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연극을 좋아하고, 취미로 해 보고 싶은 분들이 있잖아요. 혹시 그런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 있나요?


을지공간에서 공공극장이란 콘셉트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거예요. 7월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회인이 참여할 수 있는 연극 단체를 만들고요. 처음에는 그냥 연기 수업일 수도 있고, 연극론에 관한 강좌일 수도 있는데 연극, 공연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공연하는 배우 중에 가득희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직장인 연극 수업을 들었고, 그게 너무 좋아서 시작한 사례거든요. 을지로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 지역 사회에서 밥만 먹고 술만 먹고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여기서 무언가 배우고 예술 활동도 하면 좋겠죠.


을지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신도시

맥주 마시러 자주 갔었는데. 신도시를 간 이후로 을지로가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이 주변을 탐방하기 시작했어요.


페이보릿

이 근처에서 독립 잡지를 만드는 페이보릿을 좋아해요. 거기서 작은 바를 같이 운영하는데 분위기가 좋아요.






취재 길수아 홍주희

글 & 편집 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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