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다시 나를 배우는 첫 시간

물 위에서 나를 마주했다! 수영 이야기 ①

by 프로불평러

그동안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던 것

어릴 적 바닷가에서, 튜브에 탄 채 작은 파도에 휩쓸렸던 적이 있다.
내 의지가 아닌 강한 힘에 휩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물에 잠겨 ‘꼬르륵~’하는 것을 느꼈던 그날.

팔다리를 휘저어봤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성인이 될 때까지 가슴 언저리까지 차오르는 물 속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퇴사 후, ‘안 해봤던 것을 해보겠다’며 수영을 배우겠다고 했으니 주변 사람들에겐 꽤나 의외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수영이었을까

어느 해, 언니와 조카와 함께 오키나와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그곳 리조트엔 수영장이 있었고, 일정이 끝난 후 야외 수영을 즐기기로 했다.

분위기는 참 좋았다.
그런데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물이 무서우니 발을 떼지도 못했고, 둥둥 떠있지도 못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당시, 막 수영을 배우던 조카가 자기 엄마에게 파닥거리며 다가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낭만적인 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 작은 수단 하나가 나에겐 없었다.




수영장으로 향하던 새벽의 마음

막상 수영장을 가려 하니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에 괜찮은 수영장이 어디 있는지, 시간대는 어떻게 되는지, 내가 신청해야 할 강습은 어떤 건지조차 몰랐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집에서 버스로 꽤 가는 거리의 수영장에 아침 8시 강습을 신청했다.

그냥… 남들이 다 출근하는 시간대에 나는 수영장에 있는 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 평화롭고도 이상한 자유.


드디어 D-day.

이른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헛!!!생각지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수영을 하는 8시가 ‘출근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버스를 타는 그 시간도 이미 사람들에겐 하루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한껏 차려입고 버스에 올라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나는 대강 걸쳐 입은 옷, 쌩얼에 모자, 수영가방을 들고 앉아 있었다.

그 상황이 조금 민망하다.




수모 하나에도 망설임이 생긴다

수영장에 도착해 등록 내역을 확인하고, 사물함 키를 받아 입장했다.


데스크에서 키 수령 → 여성 탈의실로 입장 → 샤워 → 수영복에 비누칠 → 입고 대기 → 수업 시작


수영장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최근 수영을 시작한 엄마 덕분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샤워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문제는 수모였다.

긴 머리, 뻑뻑한 실리콘.
‘이게 정말 머리에 들어가는 게 맞긴 한가?’ 싶을 때 옆의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씀하셨다.

“물 살짝 담아서, 휘릭 눌러쓰면 돼요.”

아무렇지 않게 건넨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시도해보니 쑤욱~ 들어간다.

Very Goooooooooooooood~!




똑같이 입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덜어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영장에 들어섰다.
살이 여기저기 붙은 내 몸에 수영복은 착 감겼지만, 이상하게 부끄럽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입고 있었고, 그 공간에서는 그것이 전혀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시 정각,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수영장 한가운데로 한 남자가 나와 구령을 붙이더니, 사람들은 풀을 따라 둥글게 서서 그의 동작을 따라 10여 분간 체조를 시작했다.

단체 체조라니...
왠지 웃기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몸에 딱 붙는 수영복을 입고 숙이고 뛰고 하는 일은 꽤 낯설다.

체조가 끝나자 남자가 외쳤다.

“오늘 첫 수업이신 분들, 앞으로 모여주세요~!”

나는 초보자반으로 바로 배정되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는 말

초보자반은 물이 허리까지 오는 얕은 수심의 풀이었다.
주로 어린이들이 노는 풀.

그곳엔 검정 전신 수트를 입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묶은 예쁘장한 얼굴의 여자 강사가 있었다.
단정하고 단단한 느낌이 여군 같기도 했다. 멋있다.

그녀는 간단히 인사한 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자, 한 명씩 물에 엎드릴 거예요. 물 공포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여기선 땅에 닿으니까
무서우면 그냥 서면 돼요. 괜찮아요.”

그 말에 묘하게 용기가 생겼다.
맞다, 서면 되는 거였다.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는 일에 나는 너무 많은 겁을 냈던 걸지도.

수모와 수경을 다시 고쳐 쓰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엎드림, 그리고 둥둥— 떠오름

에라~ 모르겠다.
나는 과감히 물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떴다.
정말 둥둥 떠올랐다.

조금 더워진 날씨라 물은 시원했고, 눈을 뜨면 바닥이 보였고, 귀에는 졸졸졸졸 물소리가 들려왔다.

한편으론 어이없었다.
이렇게나 간단히 뜰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아니, 어떻게 이렇게 단번에 물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아마도 ‘일어나면 바닥에 닿는다’는 그 단순한 사실, 그러니까 안전하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확신이 없었던 시간들이, 내 안의 두려움을 조금씩 자라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첫 수영 수업은 물 위에 ‘뜨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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