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발렌타인을 보며 느낀 사랑 이야기
그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
우리는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보고, 뮤지컬을 보고, 드라마를 본다.
"왜" 보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근데 "왜" 심심해서 그걸 찾게 될까?
그것을 보면 어떠한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슬픈 감정일 수도 있고, 행복, 기쁨, 불행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봤을 때 우리의 마음,
즉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을 보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보는 것은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껴보려는 시도이다.
결국 모든 예술작품은 "감정"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왜" 만들까?
예술가들이 감정을 표현하려고 만든다.
이것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같이 느껴줬으면 하는 예술가들의 바람일 것이다.
결국 예술이란 우리들의 감정의 통로이다.
"왜?"라는 질문은 사실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감정에 대해서 잘 알게 해 준다.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겐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왜? 왜 그럴까?"라는 질문은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어린아이들의 왜?라는 물음에 “왜? 지옥” “질문 폭탄기”라는 말을 쓸 정도로
왜?라는 질문에 거부감을 갖거나, 피곤해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가장 궁금해할 나이인데도
어른인 우리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현실에 지쳐 그 질문들을 힘들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왜?"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3살에서 5살 가장 순수한 나이인 어린아이들이, 사실 우리의 가장 순수했던 모습을 갖고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순수함을 잊지 못해서 “에술작품”이라고 포장된 본인의 억눌린 감정들을 고급스럽게 정제하여 표출해 내고 느끼고 싶어 한다.
표현되지 못하고 억눌려버린 감정은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한다.
타인과의 싸움, 오해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블루발렌타인의 신디와 딘이 그렇다.
그들은 결국 사랑했지만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절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본인의 그림자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실 남자가 더 로맨틱하다고, 여자는 조건과 능력 성실함을 보고 남자를 고른다고.(물론 요즘 세상엔 그렇지만은 않지만, 영화는 예전 배경이라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신디는 자신의 할머니를 보며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 했다.
신디는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했지만, 인생 경험이 많은 신디의 할머니는 감정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해주셨다.
여기에서도 강조했던 "감정"의 중요성이 나온다.
신디는 무책임한 전 남자친구와 비교되며, 본인을 진정으로 사랑해 준다는 감정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준 딘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고, 딘은 “느낌”을 따르는 사람이기에, 신디에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딘은 세상에게 항상 부정당해왔다.
세상은 딘에게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그냥 빨리 일처리나 하면 되지, 디테일은 뭐 그렇게 신경 쓰나?”라고 말해왔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고 그의 직감을 따라 살아왔다.
딘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했다.
있는 그대로 본인을 사랑할 줄 알고, 남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 그는 가장 사랑했던 신디가 본인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것만큼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딘이 부족했던 것은 자기의 사랑의 언어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표현할 줄 몰랐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조절하기보단 상대에게 설명 없이 알아주는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딘은 누군가에겐 그저 철없고, 능력은 있지만 한량같이사는 사람일지라도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고, 신디를 사랑했고 테일러를 사랑했다.
그는 그런 그의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의 친딸이 아님에도, 그녀에 대한 불평은 단 한마디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딘은 신디보다도 딸을 더 예뻐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인생보다도 신디를 더 사랑했다.
본인이 다 바꿀 테니, 제발 헤어지는 것만큼은 바꾸고 싶어 했다.
신디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대체 "왜" 그녀는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신디는 이상주의를 동경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당연하게, 딘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신디는 처음에는 이상을 찾는 듯했고 그게 행복하다고도 느꼈다.
그녀는 그의 감정적인 부분, 이상적이고 세상을 예술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면이 싫지 않았다.
사실 신디에게도 처음엔 그와 있으면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신디는 그 감정을 싫어하기보단,
어쩌면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순수하며, 사랑밖에 없고
아무것도 없던 그와 결혼했다.
신디는 명백하게도 둘의 위치, 가정사, 능력, 사는 곳 전부 차이 났음에도 개의치 않아 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자유로운 모습은
신디에겐 독으로 돌아왔다.
사실 애초에 딘은 변한 적도 없고, 그는 그때와 지금 똑같이 지독하게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결혼 후의 그의 모습은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사실 신디의 마음가짐의 변화였을 뿐,
사실 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신디를 사랑했다.
그는 그대로였고, 세상을 낭만과 자유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신디는 그가 지독하게 현실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예나 지금이나 알고 있었음에도, 그때는 모른 척했을 뿐이고, 지금은 이제야 그걸 온전하게 인정했을 뿐이다.
신디는 이상만으론 절대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고 이상과 현실에서 싸우다, 결국 현실이 이겨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지고 말았다.
그 딘과 신디의 모습은 우리 현대사회의 우리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우리는 딘을 이해하기도, 신디를 이해하기도 한다.
누구는 딘을 욕할 거고, 누구는 신디를 욕할 거다.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입장이 누군가에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본다.
나의 경우를 말해보자면, 나는 평생 사랑을 찾아다녔지만,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었다.
결국 나는 전부 만족하지 못하여 차거나, 차였었다.
그리고 난 왜 항상 실패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조금 더 참아보고 만나는데.. 너도 한번 그래보지"
"그래도 조금 네가 더 참아보고 이해해 봐. 안 그러면 너 결혼 못해"
그 말은 너는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주제파악을 현실적으로 못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한편으론 수긍했다.
나의 경우 만나는 사람이 현실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것까지는 다른 것이 괜찮다면 오래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결정적으로 결혼까지 못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또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은 인생을 얼마나 진짜로 사느냐이다.
현실적인 능력이 괜찮을 경우에도, 상대방이 나에게 진심이지 않거나, 인생의 깊이가 보이지 않으면, 능력이 없었지만 마음은 괜찮았던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마음이 식어버렸다.
이 모습은 신디이기도 하며 딘이기도 했다.
나는 딘처럼 사랑을 찾아다녔고, 진짜를 찾아다녔다.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알아봐 주고 나도 그 사람을 알아봐 줄 모습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디처럼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 갈등이 스스로도 버거웠다.
차라리 딘처럼 사랑만을 찾거나, 차라리 신디처럼 현실로 돌아가버려서 이혼할 만큼의 강단이 있거나 해야 하는데, 나는 두 가지의 모습을 전부 갖고 있었다.
내 안에서는 두 가지의 자아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딘의 자아는 "난 진짜 사랑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신디의 자아는 대답했다
"아니야, 너는 현실도 고려해야 돼, 너 현실적으로 네가 밥 먹여 살릴 사람 만날 거야? 너 평생 고생해"
딘의 자아는 말했다.
"그런데, 껍데기뿐인 관계는 해봤자고, 나는 그걸 원치 않아 껍데기뿐인 관계를 만들어봤자 금방 헤어지고 상처만 늘어날 뿐이야. 너도 알잖아 결국 중요한 건 사랑 그 자체야"
신디의 자아는 대답했다.
"그런데 그 껍데기가 없으면 결국 네가 고생해, 현실적인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돈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야, 돈이 전부라고. 너 그렇게 패배자처럼 살래? 그리고 너 친구들이나 부모님 보기에 모자라 보이는 사람하고 결혼하면 니 자존심에 상처 안 날 자신 있어?"
결국 두 자아의 결투 끝에 나는 신디의 자아가 승리하고 말았었다. 사실 승리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래, 사랑이나 진심이 없더라도 남들 보기에 괜찮고 내 눈에 적당히 괜찮은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
깊이가 없어도 나를 진짜로 사랑해 주는 감정이 들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다, 그걸 어느 정도 충족하는 사람을 만났던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결국 딘의 자아는 이렇게 말하더라.
"얘는 인생에 대해서 깊이가 없어서 싫어, 평생 살아갈 사람인데 나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그렇다. 결국 나의 신디는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에게 표면적으론 잘해주지만 진심은 없어 보이는 그들을 만나고 나서 드디어 나는 인정할 수 있었다. 한 쪽만 가진 관계로는 절대 나를 만족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두 쪽 다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걸 원하는 나도 탓하지 않기로 했다.
주제파악을 하는 주체를 남에게
넘겨 줄 필요가 있는가?
스스로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고,
그 주제파악의 키를 남에게 넘겨주면
그 때 부터 불행이 시작 되는 것이다.
원래 사람들에게 너는 욕심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그로 인해 항상 위축됐었다.
당연하게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하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그저 세상이 나에게 강요하던
나답지 못한 선택일 뿐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답게 사는 것.
내 마음이 그렇다면 그런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둘 중 하나만 충족되어 껍데기뿐인 관계를 살아가거나, 신디처럼 되거나 하는 뻔한 결말은 싫었다.
나답게 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준비되었을 때 준비 된 사람을 만나고, 아니라면 그냥 나는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늦었지만 결국 깨달은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옳은 선택이리라.
내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일단 그것으로 온전하고 충족된다. 그 이후에 오는 사람이면 나에게 선물일 뿐,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는 꼭 선택해야 하는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디와 딘의 사랑얘기를 보며, 나는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주변인중에 온전히 신디인 사람, 온전히 딘인사람, 그리고 둘 다인 나 같은 사람도 떠올려봤다.
나는 사실, 딘인 사람이 결국 자기 자신을 바꿔서 남에게 맞추는 그런 사랑이 가장 안타까웠다.
나의 과거에도 있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가 변하는 게 싫어 스스로 떠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 변해버린 딘들이 있다.
그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였고, 결국 자기 자신을 가스라이팅해서
본인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나로서 바뀐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행복한지는 전혀 모르겠다. 오히려 텅 비어 보였다.
사실 신디는 그가 그렇게 되는 것만은 끔찍하게도 싫어서, 사실 딘을 가장 사랑하기에 그를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가장 힘든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사랑의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 뿐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세상을 바란다.
딘같이 "낭만과 자유" 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고 살기를 바란다.
신디들에게는 조금만 더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빗대어 채우지 않고
본인의 어두운 모습과 그림자를 그대로 끌어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영화는 본인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이며 감정의 거울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다.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그것은 본인을 한층 더 알 수 있는
나의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준다면 세상은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것은 사랑으로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