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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Sep 07. 2021

"할머니보다 아로가 더 좋아"


“나는 할머니보다 아로가 더 좋아.”

“그래? 아로가 그렇게 좋아?”

“응, 좋아.”

“그럼 엄마보다도 아로가 좋아?”

“응. 아로가 좋아.” 

“엄마가 들으면 섭섭하겠는걸.”

“아니~ 엄마도 좋고.” 하면서 눈치를 살피면서 웃는다.


유치원 스쿨버스에서 내려 내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면서 진영이가 말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좋으면. 이제 친구 좋은 줄 알아가는 것 보니 많이 컸구나, 내 강아지.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아 아쉬운 맘이 크다. 할머니보다야 당연 친구가 좋겠지만 6살짜리 손녀 입에서 엄마보다 친구가 좋다는 말에 내가 왜 섭섭하게 들리던지.


된장국을 좋아하고 상추에 고기를 얹어 쌈도 잘 먹는 시골입맛 진영이. 예쁜 입으로 방울토마토를 먹으면서


“할머니, 오빠는 토마토가 싫대.”

“오빠는 사과를 좋아하잖아.”

“이렇게 맛있는데 왜 싫을까?”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 거야.”

“할머니 나 콩나물도 잘 먹지? 맛있다!”


외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고 먹을 때마다 엄지 척으로 답해주는 속 깊은 진영이.


“우리 강아지 고마워, 맛있게 먹어줘서.”

“우리 엄마도 요리 잘해.”

“외할머니 1등 엄마 2등 바다할머니 3등”

이렇게 요리 등수까지 정하며 쫑알쫑알. 계속 1등 하려면 더 맛있게 만들어 줘야겠는걸.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나보다. 6살 손녀 앞에서 춤추라고 ㅋㅋ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 칭찬할 일만 있을 줄 알았다 손녀에게 인정받으니 이렇게 기분이 좋네. 그러고 보니 젊으나 늙으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다 있는게지. 


계속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고 만지고 싶다.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선뜻 다가가지 않는 부끄러움이 많은 진영이. 욕심도 많아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큰 인형보다 작은 인형을 좋아한다. 유치원 방학 때면 엄마와 떨어져 며칠 우리 집에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 손자 손녀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그날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물어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할미가 되어 아가들 맘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나 떠보려는 것 같아 주저하기도 하지만 알고 싶은 건 사실이니까.

 

“우리 아가들 오늘 기뻤던 일은?”

“놀이터에서 재있게 놀아서 기뻤고~”

“할머니, 나도 나도야”

“슬펐던 일은 엄마 아빠가 싸워서 슬펐어.”

“어이쿠 그랬구나. 내 강아지들.” 


부부 사이에 다툴 일이 왜 없을까. 그래도 어린 자녀들 앞에서는 삼가야지. 엄마 아빠가 큰소리로 싸울 때 어린 아가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애기들 있을 때 다투지 말라고 참견해야겠다. 모든 부모는 결혼한 자식 가정 일에 깊이 참견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긴 하는데. 자식을 키울 때보다 손자 손녀에게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건 내 자식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어서일 거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고달픈 일상이었으니. 아가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낮은 걸음으로 함께 걸어 보지만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기게도 어설픈 어른처럼 굴려는 나 자신이 너무 속상하다.     


진성이는 진영이 오빠다. 맑은 국을 좋아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속깊은 손자.

고기를 좋아하고 사과를 잘 먹는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현관에 책가방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곧장 책을 들고 앉는다. 몇 번이나 불러도 모르는 그야말로 집중력 하나는 대단하다. 가끔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성이는 친구를 잘 사귀고 양보심도 최고다. 배려심도 있고 참을성도 깊다고 친구엄마들이 더 좋아한단다.


“할머니 진영이가 요즘 짜증이 많아졌어요.”

“그랬어? 이유가 뭘까?”

“나를 자꾸 괴롭힐 땐 주먹이 쑥 나가고 싶은데 잘 안 나가져요.”

“어머. 오빠가 참아 주는구나.” 


여동생을 얼마나 예뻐하고 보호해 주려는지 지금부터 참는 연습을 하는 듬직한 오빠다.

두 살 터울인 남매는 투닥거릴 때가 많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게 당연한 거라지만 진영이가 오빠를 괴롭히는 건 사실이다. 친구처럼 여보 당신하며 놀다가도 비위 상하면 다투는 게 아이들이지. 진영이가 오빠를 괴롭혀도 진성이는 참고 참다가 주먹이나 발차기로 한 방 날리면 소리소리 지르며 울고. 오빠라는 이유로 늘 참아내는 진성이가 안쓰럽고 기특하다. 


바삐 살다보니 내 자식들이 누리지 못한 거 보상이라도 하듯 손자 손녀에게 더 좋고 큰 장난감을 사주게 되는데 그것이 아가들 미래에 대한 자부심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게 하고 싶진 않다. 최선을 다하는 일상이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세심한 교육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남편은 진영이를 더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무릎에 앉게 할까 한번 안아 보려고 궁리해 보지만 그때마다 쏙 빠져나가는 진영이가 외할아버지는 속이 탄다. 언젠가 한번은 무슨 일인지 엉덩이를 외할아버지 무릎에 들이대며 앉았는데 그때 남편의 하회탈 같은 웃음은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진성이는 자기 꿈은 목사님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기타 치며 찬양하는 목사님이 되겠단다. 기타로 찬양하려면 피아노부터 배워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는 순수한 장래 목사님이다. 아이들이 키가 자라면서 생각도 언어도 자라고 자기들의 생각을 쏟아내는 것을 볼 때 내 딸들도 저런 과정이 있었건만 죄다 잊어버리고 손자 손녀가 새롭다. 마음이 건조해지고 새로울 것이 없는 삶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기쁨을 주는 우리 진성이 진영이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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