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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Sep 12. 2021

바나나는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지쳐간다. 얼마나 힘든 여정이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스크 쓰기, 손 씻기,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 우울하다고 병원을 찾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음식은 먹어야 하기에 반찬을 만들어 끼니때마다 상에 올려야 하니 무얼 요리해야 맛있고 모두가 좋아할까 고민하면서 오늘 필요한 품목을 집에서 메모해 재래시장에 갔다. 


내 생일이라고 동생이랑 두 딸이 온다는데 ‘미역국 끓이고’, ‘오랜만에 조기매운탕을 해야겠다’, ‘낙지를 살짝 데쳐 야채와 함께 초무침도 맛나겠지?’ 메뉴를 생각하며 동선을 머리에 그려 장을 보고 집에 오자마자 생선 손질부터 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식당에서 편하게 해결했을 가족 모임. 생일 맞은 본인이 장을 보고 음식을 한다는 게 가족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코로나가 제발 모이지 말라는 걸. 생일이고 뭐고 내가 만든 음식 맛있게 먹으면 그거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티셔츠를 사려고 어느 가게 앞을 지나는데 바나나 먹는 사람이 보였다. 순간 ‘어? 나도 아까 바나나 샀지?’ 근데 집에서는 보지 못했다. 세심하게 동선을 여러 번 되돌려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계산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봉지를 들고 나왔는지 다른 것을 사면서 어디 두고 잊었는지. 머리가 하얗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그 야채 가게에 가 봐도 분실물은 없단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 먹었겠지만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되는 건가 보다. 치매환자들 표정이 천진한 것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무표정한 거구나. ‘정신을 차리자’ ‘내가 미쳤지 미쳤어’를 내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 잃어버린 물건보다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 더 힘들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TV 앞에 자주 앉게 된다. 요즘에는 마음에 드는 프로는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찾을 수 없고 출현한 사람들마다 수다 떨기 시합이라도 나온 것처럼 주저리만 늘어놓으니. 정말 다들 코로나 때문에 정신들이 없구나 싶다. 젊은이들은 저런 프로를 보면서 크크 히히 잘도 웃던데. 에휴. 남 탓할 게 아니었나 보다. 정신은 나부터 차려야지. 


채널을 드라마로 돌려봐도 뻔한 스토리에 짜증 나서 꺼버리려고 하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당신은 저게 재미있어?”

“보던 거니까 그냥 보는 거야.”

“내용이 왜 저 모양이야?” 

바보상자를 바보처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비웃는 말투로 흘기니까 미련 쓰고 앉아 있게 된다. 그것이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소재가 왜 저 모양인지. 맘속으로 투덜대며 괜히 TV 탓을 해본다. 뻔한 내용의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는 내가 수준 미달에 속없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구겨진 자존심 만회라도 하려는 듯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음률에 맞추어 운동을 했더니 호흡이 빨라지고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나를 바쁘게 하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드라마에 시간을 뺏기지 말자. 돋보기 쓰고 글 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콧잔등이 걸터앉은 안경에 눌려 신경이 날카롭다고 소리치지만 그럴지라도 글 쓰고 책을 읽자. 새로운 요리에도 도전해 보자. 영어나 중국어를 배워도 좋을 텐데. 머리가 응해 줄지 조금 걱정은 되지만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시장에서 바나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뇌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을 거고, 뇌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텐데. 오늘 나의 행동에 경고등이 켜졌다. 정신 차리며 살라는 경고. 이렇게 된 거, 초조해하지 말고, 머리가 잠시도 쉬지 못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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