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빨래를 했다. 검은색만 추려 세탁기에 넣고 얼마 후에 "다 됐어 됐어" 하기에 내용물을 꺼냈더니, 에그 머니. 먼지가 군데군데 뭉쳐서 엉겨 있다. 세탁기 청소도 정기적으로 하건만 세탁물에 묻어 있던 먼지가 제 방을 찾지 못하고 떠돌다가 '에잇' 하고 빨래에 도로 붙었나? 아니면 세탁기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암튼 기분이 안 좋고 찜찜하네.
겉에 보이는 먼지를 털고 뒤집어 보았더니 속에도 여러 곳에 꼴통같이 사납게 붙어 있다.
“도대체 왜 매번 이런 거야, 왜?”
걸음을 쿵쿵거리며 밖에 나가 털고 또 뒤집어서 털어도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아 물속에 던져버렸다. 몸은 좀 힘들어도 손으로 다시 씻어 탈수했더니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사람 마음도 뒤집어 볼 수 있다면 신나게 좋으련만. 옳지 못한 생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빨래처럼 털어버리든지 아님 다시 물에 씻어 새롭게 다시 시작할 텐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알 수가 있어야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잖아! 친하다 생각했던 직장 동료도 함부로 말을 할 때는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많이 느끼고, 나도 누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나면 곧 후회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사람 속은 알 수 없도록 만들어졌나 보다.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사이도. 그러기에 언성을 높이고 시행착오를 겪는 거지.
“당신은 결벽증이 있나 봐.”
“결벽증? 그게 뭔 소리요.”
“누구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싫고 물건도 반듯해야 하니.”
“그게 병이라는 거네?
“나도 깨끗하고 바른 거 원해. 그치만 너무 심해.”
“당신은 지저분한 여자 만나 귀신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허허허.”
“나같이 깨끗하게 치우는 여자 만난 것 감사해야지.”
“말로는 당신을 이길 수가 없어.”
나도 인정한다니까. 필요 이상으로 반듯해야 되고 깨끗해야 했던 병적인 여자. 근데 나이가 드니까 놓여 있던 자리에 물건이 삐뚤게 있어도, 주방 바닥에 음식물이 떨어져 얼룩이 있어도 바로 닦아내지 않고 있더라? 몇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나치다 슬쩍 보고서야 해결하는 버릇이 생겼다니까. 이 대담한 행동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이를 핑계로 슬금슬금 나오는 것인지. 못살겠다 정말.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드니 많은 것이 변해가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게을러지는 것. 게으르니 주위가 지저분하고 집에 있을 때는 한나절이 돼야. 세수를 한다. 반찬이라고는 김치 한 가지면 끝. 얼마 전만 해도 어림없었을 이 게으름에 요즘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평소에 게으름도 악한 거라 생각하며 살았거든. 요즘엔 지저분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처에 처방이 될 수도 있다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소한 일로 고민하고 짜증내기보다, 현실에 적응하며 부대끼지 않는 지혜가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뭐 그런대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요리도 척척하고, 청소도 깨끗이 하고, 분리배출을 잘해 낼 때도 있으니 감사해야지. 이만큼 건강한 것도 또 감사하잖아? 빨래에 붙어 있던 먼지도 들어가야 할 곳을 찾지 않은 게으름뱅이인지 못 찾을 만한 상처가 있는 건지 모르지만.
암튼 그러나 저러나 게으른 건 슬프긴 하네. 맹물에 다시 곤두박질한 빨래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미처 떨어트리지 못한 먼지를 털어내기란 쉽지 않지만.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마르면 한 번 더 '탁탁' 털어야지.
더불어 내 마음도 훌훌 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