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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n 30. 2021

찡그린 얼굴의 엄마

그게 나였다


한강변에 뚝방마을이 있었다. 둑을 따라 판잣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주위에 개발 붐이 일어나 단독주택들을 짓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가 결혼해서 들어갈 신혼집이었다. 


나는 결혼하려고 집을 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시골에서 사업하시던 시아버님의 빚을 해결해야 했고,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생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서울에 한 칸짜리 전세방만 얻어놓고 있어도 동생, 친구, 이웃사촌 들까지 엉덩이를 밀고 들어왔다. 


온몸을 짓누르는 맏이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남편은 잘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면서까지 집안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당시의 애환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당연히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그럴 것이다.      




결혼하니 시동생들은 이미 신혼집에 들어와 있었고, 속 모르는 친구들은 신혼 초에 집을 산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살다 보니 식구들이 들어오는 대로 밥상을 차려야 하기에 찌개도 국도 맛이 별로였다. 뚝배기에 된장을 보글보글 끓여 우리 가족만 단란히 둘러앉아 먹는 날이 언제쯤 올까, 꾸지 말아야 할 꿈을 상상하기도 했다. 일 년 후에 시골에 계시던 시아버님이 병환으로 돌아가시자 시어머니까지 우리 집으로 오셨다. 아무리 식구라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서 내 마음은 매일 상처로 찌그러졌다.      


사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나는 늘 얼굴이 굳어 있었고 삶의 의미도 찾고 싶지 않았다. 큰딸 민이는 “나 어릴 때 기억에는 엄마 얼굴이 항상 찡그려져 있었어.”라고 말했다. 너무 미안하다. 그런 모습을 남겨 주어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가계는 점점 어려워졌다. 대형마트에 갈 일도 없지만 한 번씩 가면 사람들이 카트 가득 물건을 사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우리는 살 것도 별로 없는데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기웃거리기만 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카트 가득 물건을 사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울 한 적이 많았고, 까만 텔레비전, 천장까지 닿는 냉장고에 세 쪽짜리 장롱도 가지고 싶었다.     


몇 년 살던 단독주택을 팔고 전세로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망원동에서만 5번이나 이사를 다니다가 지금의 집에 정착하면서, 그토록 원했던 가전제품과 장롱이 들어왔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어 다른 동네로 이사하고도 싶었지만 망원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친구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새로운 곳에서 친구들을 사귀려면 이건 아이들에게 못할 짓인 것 같아 남편과 의논 끝에 머물다 보니 망원동에서 어느새 42년을 살고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기쁜 일, 힘든 일도 겪으면서 사는 거라고, 그런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나 싶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다고 고백하니 또 다른 감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 또한 감사한 일. 




어릴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갔다가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시댁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셨고, 병환에 계신 시아버님을 통해 찾아오셨다. 복음의 씨앗이 시댁에 떨어졌는데 어찌 그대로 있겠는가.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구원되셨고, 그때부터 시어머니는 하나님의 열성 팬이 되셨다. 물론 나는 시어머니의 믿음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고. 그때부터 당당하게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으며 그동안 마음에 쌓였던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힘들다고 나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차곡차곡 안으로 삼키던 나날이 시댁 식구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시려는 그분의 뜻이었음을 알았다. 나를 괴롭히는 환경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철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 거다. 아마도.


집안에 물건을 갖추고 살다 보니 그것도 별 의미가 없으며 공연한 허영심이었다는 걸 알았다. 물건들이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갖지 못한 자의 못난 몸부림이었나 보다. 대형마트에서 카트 가득 물건을 담아 보아도, 천장까지 닿은 냉장고를 열고 닫아 보아도, 그저 그런 것임을 예전에는 몰랐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 누리는 것들이 그저 부러웠었다.


천하를 다 가져본 솔로몬 왕의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읊조림을 성경에서 수없이 읽고 들었어도 사실 별로 관심 없었다. 욕심과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린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기쁨은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무기가 아닐까? 기쁨의 용량을 충만히 채우기 위해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운동하고, 봉사하며 기도에 힘써야겠다. 그리고 기쁨의 용량이 큰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긍정의 힘을 나누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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