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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ug 09. 2021

내 어릴 적 친구

  

어릴 적 함께 놀던, 입이 크고 노래를 잘하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공부할 책을 보자기에 돌돌 말아 허리에 단단히 묶어서 뛰기도 하고 얌전히 팔에 안기도 하며 국민(초등)학교까지 걸어갔다. 경기장 같이 넓은 운동장을 활개치며 뛰어다닌 코흘리개 시절 친구였다. 친구와 나는 놀다가 끼니 때가 되면 어느 집에 있든 그 집에서 밥을 먹고, 함께 놀고 숙제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보인다. 네 집 내 집 따지지 않았던 나의 친구.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살면서 무척 명랑했던 그 친구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언니네 집에서 살았다. 엉겅퀴처럼 억세고 강한 성격이어서 다른 친구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그 친구와 내가 헤어지게 된 것은 친구 언니가 이사를 가면서였나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누구의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했는데 딱 맞는 말이었다.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어찌어찌 세월이 흘러 어느 지방 도시 작은 술집에 앉아 있는 친구를 보았을 때, 나는 눈을 의심하며 깜짝 놀랐다. 친구가 술집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거려서 그날은 그냥 지나쳤다. 친구가 민망해질 것 같아 모른 척은 했어도 속으로는 너무너무 반가웠다.


며칠이 지난 뒤에 찾아갔더니 친구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친구 언니네 부부와 우리 부모님 사이도 친동기처럼 가까웠던 터라 소식이 궁금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이슬방울을 보면 감동하고, 바람꽃 향기에도 호들갑스럽게 폴짝 뛰는 청년 시절을 보내야 마땅한데 왜 어쩌다 이런 선택을 했으며 언제부터 꼬인 인생길로 접어들었는지.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살겠노라 꿈꾸어야 할 시절에 왜 작은 선술집에서 웃음을 감추며 살게 되었는지. 


친구는 얼굴에 화장기 하나 없이, 흔한 유리 목걸이 치장도 하지 않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기운도 없어 보였고 얼굴색은 누렇게 떠 있었다. 그야말로 변두리 허름한 술집에서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니 안쓰럽고 찾아간 게 미안했다. 그런 친구에게 가족들 소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모습도 어릴 때 고향 친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텐데. 친구의 얼굴에는 잡초처럼 살아온 지난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세월의 아픔도, 슬픈 현실도 남들에게는 한낮 이야깃거리겠지만, 먼 훗날 감추고 싶은 과거라기보다는 열심히 살았노라 자신을 다독여가길 바라본다.


어느 날씨 화창한 날 그녀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찾아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이 친구 뒤를 따라 쫄랑거리며 들어왔다. 그녀의 마음 상태와 환경 등 모든 것을 알고 싶었지만 상처 많은 가슴에 더 아픔을 남길까 조심스러워 궁금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그저 내가 그녀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오전에 병원으로 와 내가 없는 기숙사에서 내내 뒹굴다가 저녁이면 장사하러 간다면서 오고가기를 한동안 계속하더니 어느 날부터 오지 않았다. 술집에 찾아가 보아도 거기 없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자신이 비참하다 여겼을까. 잊혀진 사람이 되기 싫어서 찾아오고 또 맴돌았나 보다. 나의 오랜 친구는 그렇게 허공에 헛웃음만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오늘은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녀를 그렇게 만나고, 잊지 않으려 기억 속에 담으려 생각하고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그 얼굴이 희미하다.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했던 일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그 다짐을 언제 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마저 줄어든다. 슬픈 인생이 되어간다. 


황혼의 나이로 접어든 친구가 보고 싶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결혼은 했을까?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남편을 만났을까?

그래, 사랑받는 아내로 엄마로 잘 살겠지.

아이들은 몇 명일까, 행복은 할까? 가끔은 나를 생각할 때도 있었을까? 

우리 만나면 물어볼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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