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Jun 10. 2021

호스피스 병동에서


   

소독 냄새, 병균 냄새, 갖가지 수많은 사연이 숨어 있는 곳. 


월요일에는 발걸음 마음걸음 단단히 붙잡고 아침에 집을 나선다. 운동 삼아 20분 거리 망원역까지 걸어간다. 6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강진역에 내려 병원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병원 마당을 밟는 순간 아픈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예약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장례식 건물에 있는 원목실. 엘리베이터를 타면 향 냄새와 알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자극하지만 그것 또한 사람 사는 냄새인 것을.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 건 2010년 6월부터다. 교회에서 호스피스 교육 3개월 발마사지 교육 3개월을 이수하고, 실습 나간 곳이 순천향병원이다. 처음에는 실습만 한번 해보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환자들을 만나고 나서 한 번만 더, 한 것이 10년이 되었다. 


비에 젖은 지푸라기처럼 늘어져 온몸으로 흐느끼는 환자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명멸의 순간들을 오가며 고통을 참아내는 환자들. 만 가지 걱정을 하던 생각이 전부 멈추고 물끄러미 창밖만 바라보고는 ‘저 햇살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웅얼거리는 환자들.


발마사지는 온몸 마디마디에 숨을 쉬게 해주는 치료법인데 마사지를 해드리고 나면 


“시원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통증이 심해서. 다음주에는 꼭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축복 받으세요.”

“발마사지를 받으니 온몸이 녹는 것같이 좋아요.”

“선생님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예요.”


듣기도 민망한 인사를 받곤 한다. 오히려 ‘내가 천사라는 말을 들을 만한 일을 하고 있나?’ 스스로 되묻게 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돈도 능력도 지식도 아니고 몇 사람이 재능으로 섬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천사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주에 살아 계시던 분이 일주일 후에는 안 계시고, 다른 분이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은 가슴을 쿵 내려앉게 한다.     

“일인실로 가셨어요.” 

간호사들의 이 대답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한번은 일인실로 향하는 아픈 엄마를 바라보지 못하고 구석에서 슬피 울던 딸의 울음소리에 나도 울고 말았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저 슬픈 울음소리가 내 딸 정아의 울음소리와 비슷해서일까? 내가 죽으면 정아도 저렇게 소리를 죽여 가며 울 것만 같아 더 눈물이 났나 보다. 그 울음소리는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흔들어 지금도 또 슬퍼진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봉사이지만 처음에는 환자들의 발을 만진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은 건 사실이다. 내가 얼마나 깔끔을 떨고 편견이 많은지. 발을 만지기 싫으면 봉사 안 하면 될 터인데, 어쩌다 한 주 못 가게 되면 공연히 미안하고 숙제를 안 한 것 같아서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 이 마음은 또 뭘까. 


한 해 두 해 하다 보니 10년이란 시간 속에서 웬만큼 익숙해졌다.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려고 봉사하는데 꿋꿋이 병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그것도 암과 싸우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열 수 있을까? 모든 이들이 꺼리는 발. 사람의 몸에서 제일 더럽다는 발을 미안함을 담아 나에게 내밀면서 꼭꼭 닫았던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아픔을 펼쳐 보이는 환자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말씀이 고통 속에 있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위로를 줄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아무것도 묻지도 설명하려고도 않고 먼저 피부를 만져주는 발마사지를 통해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기다렸다. 육신의 고통은 누구도 채워줄 수 없고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외로운 길이기에 더 슬픈 것 같다.      


긴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에게까지도 기댈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

‘다만 머리를 감아 빗고서 햇살에 빛나는 푸른 잔디 위를 걷고 싶다.’






발마사지는 신청하신 분들 위주로 하는데 어느 날은 신청하지 않은 환자께서


“나도 발마사지 해주면 안 되나요?”

“미리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한 번만 해 주세요. 꼭 받고 싶어요.”

“먼저 신청하신 분들이 기다리지만 해 드려야죠.”     


차마 거절 하지 못하고 마사지를 하고 나오려는데 돈을 건네신다.     


“아니예요, 돈은 안 받아요. 하나님이 보내셔서 봉사하는 거예요.”

“알고 있어요. 내 마음이 편하려고 그래요.” 하신다.

“나는 천주교 신자예요.”

“그럼 환자분 이름으로 헌금할게요.”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그것이 그 환자의 마지막 헌금이 되었다. 

바로 다음 날 가톨릭 신자인 그분이 천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좋아하시던 모습이 그분의 마지막 웃음이었고 또 내가 마지막을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모든 만남은 뜻이 있고 뜻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면 누군가에게는 큰 기쁨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섬길 수 있다는 마음에 감사가 넘친다. 


나에게 건강을 주신 것도, 봉사의 마음을 주신 것도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걸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알게 된다. 삶이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간다. 나는 무엇을 보고 사는지, 무엇을 통해야만 마음이 정화되는지, 병상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무엇을 깨닫는지 돌아본다. 환자들의 깊은 한숨과 고통을 헤아릴 수 없지만 그대들은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살아내기를, 오늘도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며 고민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