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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n 13. 2022

나이 들어 변해가는 것2


오늘 아침 잠에서 깨는 동시에 확 들어오는 생각이 '도시락 반찬 뭐 하지?' 

밤새 죽은 것처럼 자다가 깨어날 때 처음 떠오르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나는 남편 도시락 반찬 걱정하면서 깨어났다. 남편의 직장 사람들은 코로나로 불안해진 식당에 가기 보다 안전한 도시락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도시락이람, 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했으나 요것저것 반찬 네 가지에 야채랑 과일을 색색이 담는 즐거움도 컸다. 

일어나기 전에 항상 침대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도시락 싸면서부터 벌떡 일어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일부러 누워 팔다리를 높이 들고 흔들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보지만 내 마음이 그만하라고 재촉한다.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거실 이곳저곳 불을 밝히고 잠이 덜 깬 눈으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그제야 편안한 몸놀림으로 화장실도 가고 목구멍에 붙어 있던 이물질을 떼어내려고 켁켁거리고. 따뜻한 물 한 컵을 먹기 위해 칫솔로 혓바닥을 싹싹 문질러 씻어준다. 나이가 들면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난 얼마나 감사한지. 뒤늦은 아침 인사로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를 살아보리라 소변을 보면서 웅얼웅얼 기도한다.

병원에 가보면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입원 치료하는 사람도 많던데.

“어디가 아파서 입원까지 하셨어요?”

“아~ 글쎄 나는 소변이 지랄 맞게 나와서 왔지 뭐유.” 

호스피스 봉사하면서 만났던 환자들 덕에 소변볼 때마다 감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모든 세포들이 둔해지고 탄력이 없어지는 느낌도 알게 되고 자신이 지금 어느 상태인지도 알게 되니 대처도 적절히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날부턴가 잘 움직이던 눈이 뻑뻑해지고, 가끔 시리기도 하고,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눈물도 주루루 흘렀다. 이 울림은 아무 일 없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할 일이고 감사를 잊지 말라는 신호일 텐데.

신문을 볼 때도 큰 글씨만 훑다가 잔글씨에 눈알이 아프도록 고정해보지만 당최 모르겠다.

'아~ 이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는구나.'    


나이 들어가면 돈 쓸 일이 있나 싶어도 병원 갈 일도 잦아지고 영양제도 필요할 때 스스럼없이 구입해야 행복하고 좋다. '늙은이가 무슨 돈이 필요해'라고 했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아무 소리 못 하고 입 다물고 있다. 아이들이 용돈을 주면 슬그머니 챙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런 계산 없이 즐거이 밥을 사는 몸짓을 누구나 하고 싶을 거다. 도시에서는 한 발짝만 나가도 돈, 돈이다. 웬만한 거리는 운동 삼아 걸어 다니지만 돈 없이는 사람 구실을 못 하는 게 삶인가 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괴롭히는 허상을 쫓아내기 위해 자유를 누려보겠다는 이름으로 소비 없는 곳으로 홀로 향하지만. 그러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함께 부대끼고 나눌 때 그 행복이라는 것이 실현되는 것 같다. 인간의 속성은 지지고 복닥거려야만 활기를 느끼고 사는 맛이 있다는 것을 자식 둘이 가정을 꾸리고 하나둘 떠난 다음에야 알았다. 씁쓸하게도. 


재래시장에 가면 딱히 살 것도 없는데 괜히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생동감에 가슴이 뛰고 활기찬 모양들을 담고 돌아오는 싶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근데 요즘은 책과 대화하는 복닥거림도, 채소를 다듬으면서 내면의 자신과의 복닥거림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슬프다. 나이 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둔해지는 몸과 다르게 입으로 나오는 말은 찰떡처럼 차지듯 야무져가고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인지 능력이 쇠퇴해진 건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인지 늙으면 양기가 다 입으로 간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실감하고 실감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좋은 것도 있다. 

옷으로 멋을 내지 않아서 좋다. 걸음걸이도 신경 쓰면서 예쁘게 걷지 않아도 되니 좋다. 늙었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모든 관심에서 제외되는 터라 그저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으면 그만이다. 자주 대하던 지인들의 이름도 가끔 “그 있잖아 이렇게 생긴 사람 이름이 뭐더라?”로 시작해 한참을 버벅거려야 떠오르는 생각들은 아주아주 슬프지만 “나이 들면 다 그래.”라고 지인들이 말해주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팔딱팔딱 일어나지던 엉덩이도 이제는 비록 바닥을 몇 번 들썩거려야 겨우 일어나지는 모양새지만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운동할 거다. 근데 운동도 나이에 맞게 해야 탈이 없다. 조금 더 걸어보겠다고 욕심내는 날에는 몸 여기저기서 욕하고 야단들이니 조심해야지. 아침에 텔레비전 속에 예쁜 기상 캐스터가 영하의 날씨라고 한다. 

단단히 싸매고 열심히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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