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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Feb 02. 2022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 봐


“엄마 시대에 맞게 휴대폰 좋은 걸로 바꾸지?”

“전화받거나 문자 주고받는 거만 주로 쓸 건데 휴대폰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알뜰폰도 기능이 많아서 좋긴 하더라고” 


딸내미와 주고받은 끝에 사고 싶은 마음이 슬쩍 들어왔다. 솔직히 가격은 얼마나 비싼지, 가족들 등살에 쓰던 것보다 조금 나은 걸 구입했다. 살 때 기분은 괜찮았지만 어떻게 가지고 놀지 몰라 괜스레 샀나 싶었다. 애들한테 전화로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홈쇼핑을 보다가 상술에 넘어가 물건을 덜컥 주문하고 ‘아무래도 내가 뭔가에 홀렸지.’ 싶어 입금하지 않을 때가 많다. 여러 번 충동 주문을 했다가 마음의 변심이나 제정신이 돌아오면 취소하기 좋게 항상 무통장 입금을 선택했었다. 어쩜 내 이름은 홈쇼핑에서 찍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후회하는 것보다 낫겠지 뭐. 귓구멍이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나? 근데 정신 차리고 나면 후회하는 덜떨어진 노친네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사는 여자, 짝꿍이 젤 싫어하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는 여자.


개인정보를 빼내려고 단추 구멍 같은 눈으로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바퀴벌레 같은 사기꾼들이 날뛰는 꼴 보기 싫어 아무거나 누를 수도 없다. 이래서 어떻게 사나. 아~ 내가 왜 이걸 샀던가. 맘 편하게 눌렀던 옛날 폰이 좋았는데.      


교회에서 독서감상문 숙제를 가끔 한다. 시 쓰는 것도 좋아해 먼저 손글씨로 쓰고 컴퓨터에 착 붙어서 검지나 중지만으로 자판을 느리게 두드리지만 문서에도 넣고 메일도 보내곤 한다. 

그래서 무식하지는 않다고 자신했는데. 작업하다 막히면 자존심 버리고 “여보 이것 좀 봐줘요.” 남편을 부른다. 아쉬운 사람이 되려 큰소리로 불러댄다. “뭔데? 뭐가 안 돼?” 남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마우스를 띠릭 띠릭. 

“이거 내가 해줄게.” 

“당신은 어디서 배웠어?” 

“나? 혼자 스스로 배웠지, 흐흐.”


조금 안다고 으스댄다. 당당하다. 쳇. 난 시대를 잘못 타고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다. 냉장고도 없고 텔레비전은 동네에 한 대만 있던 때. 프로레슬링 박치기 왕 김일 선수가 시합하는 날. 온 동네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응원했다. 

“저 일본 놈은 반드시 이겨야 돼!” 하면서.      




휴대폰으로 길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부부 모임이 있어 식사하고 카페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좀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에 카페 가는 길을 미리 알아두고 사람들을 쉽게 안내하고 싶었다. 갈 때는 골목골목으로 잘 찾아갔는데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 길 같기도 하고 저길 같기도 하고 약속 시간은 다 됐는데 정말 진땀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빵조각을 군데군데 떨어트려 놓을걸. 모르면 물어봐야지 뭘 망설여.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둘러보다 대화에 몰두하고 걷는 두 청년에게 다가가 미안함에 살짝 허리를 굽히고, 

“저, 미안해요. 우리가 여기를 가야 하는데 못 찾겠어요.” 

“네~ 폰 방향을 이렇게 하고 따라 걸으시면 돼요.” 

“아이고 감사해요.”


기특한 젊은이들, 자기들 대화를 끊어버렸는데도 친절하게 대꾸하다니. 젊은이들은 휴대폰 사용을 어찌 그리 잘 알까? 현대를 살아가려면 알고 배워야 한다. ‘늙었는데 이제 배워서 뭘 해?’라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말자. 게으르지 말자. 시대에 떨어진 모습을 고집하다 젊은 사람들 힘들게 하지 말자.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짝꿍도 배워서 으스대는데 나도 배우면 되지 뭐.      


삶의 무게라는 것을 쓸어내도 겹겹이 내려앉던 한때가 있었다. 그것이 이득이든 손해든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나이가 들어가니 저절로 알아진다. 노인들을 이해하려는 젊은이들이 주위에 많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 그래도 자존심 상할 때는 어쩌지? 이것저것 배우려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에잇 몰라 몰라. 미친 척하고 그냥저냥 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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