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도 맛있게 먹어줄래?
내키지 않지만 아침은 먹어야 할 테고, 두 여자가 밥이랑 국이 있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국 먹어 봐, 맛있어.” 나이 든 여자가 말했다. “따뜻하지 않아.” 어린 여자의 시큰둥한 대답에 나이 든 여자는 맘속으로 입을 삐죽이며 국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어다 말없이 맛있게 먹는다. 아마도 자신이 만든 음식 평가를 은근히 “이거 맛있네~”라며 먹어주기를 기대했는데 입에 대보지도 않는 행동이 야속해 일부러 맛있게 먹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나이 든 여자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내가 이런 말 하면 어때?” 어린 여자의 물음에 나이 든 여자는 평소에는 결코 먹지 않던, 그릇 바닥에 남아있는 국물을 들이마시며
“웃기는 짬뽕이야. 짜장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뒤죽박죽 짬뽕!”
둘째가 결혼하기 전에 아침 식탁에서 나눈 대화다.
둘째는 밥이든 국이든 식은 음식은 도저히 안 넘어가는 모양이다. 큰애는 맛있는 거 먼저 먹고 작은애는 맛없는 걸 먼저 먹는다. 고기 미역국을 먹을 때도 미역만 먼저 먹고 고기는 나중에 먹으려고 남긴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아끼다가 마지막에 입으로 전해오는 화려한 장식을 꿈꾸지만, 찬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동생 눈치만 보던 큰애는 “너 이거 맛없어? 그럼 언니가 먹을게” 하면서 잽싸게 낚아채 간다.
“엄마~ 힝. 언니 좀 봐.” 발을 동동 굴리며 울어 봐도 아끼던 고기는 이미 언니 목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니까 맛있는 거 먼저 먹어야지” 달래며 내 그릇 속에 고기 몇 점 건져다주면 언니에게 눈을 흘기며 조금 진정 하곤 했다 어느 집이나 한두 번쯤은 있는 소소한 사건이지만 그런 일로 웃음도 슬며시 끼어들어 즐거움을 주었다. 요즘은 아이 한 명 낳는 사람들이 많아 자식을 무슨 보물단지나 되는 것처럼 호호 불어 키우니 세상은 점점 이기적일 수밖에.
나는 밑반찬 만드는 걸 좋아한다. 지인들에게 퍼 주는 것도 좋아한다. 오이 초절임부터 무, 깻잎, 취나물, 달래, 양파, 마늘, 더덕 절임까지 무엇이든 계절에 나온 채소를 보면 담아 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특히 캠핑 갔을 때 고기와 함께 차려 놓으면 엄지손가락 척, 모두가 행복한 입으로, 표정으로 먹을 때는 막 퍼주고 싶다.
“우와. 맛있어!”
“짜지도 않은데? 레시피 좀 알려줘.”라는 반응에
“특별한 것도 아니야, 누구나 만들 수 있어.”라고 답한다.
만든 사람 행복하게 해주는 말들이지만 만든 내가 먹어봐도 맛있다. 모두들 맛있다고 하니 또 담게 되는 것도 있지.
“엄마 힘든데 이런 거 그만 만들어.”
“엄마가 좋아서 하는 거야.”
“주는 사람은 힘들게 만들어 주지만 받는 사람은 싫을 수 있어.”
“그러게 다른 사람들은 안 좋아할 수도 있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주면서도 찜찜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 시골 시어머니가 싸주는 음식 안 먹고 버린다고 하잖은가. 먹을 사람이 없어서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내 음식도 쓰레기통에 들어갈까 오싹하네, 큭. 아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딸내미들이 자기 엄마가 해준 반찬을 버리기라도 하려고. ㅎㅎ
한번은 쿠키를 구웠는데 옆집 꼬마가 문득 생각이 나 종이 접시에 담아 건네면서
“금방 구웠는데요. 설탕도 많이 넣지 않았으니 애기 주세요.”라고 했다.
“어머 고맙습니다~!”
애기 엄마의 좋아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집에 와 생각하니 ‘괜한 짓을 했나? 쿠키를 안 먹일 수도 있는데’ 후회되었다. 괜한 오지랖. 못 말리겠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먹이는 걸 벌벌 떨면서 선택하던데.
젊을 때 싫어하던 음식도 나이 들어가면서 몇 번이나 바뀌는 것 같고 성격도 변하는 것 같다. 말이 없던 내가 - 수다쟁이까지는 아니지만 - 예전보다 말 많은 노인네가 된 거 보면. 특별하지 않은 음식을 만들면서도 좀 맛있으면 옆집이랑 아래층 집이 생각나니 참.
“여보 이것 맛 좀 보세요.” 입에 넣어주면 “음~ 맛있어!” 남편의 과장된 표현은 나를 춤추게 한다. 좀 과장하면 어떤가. 과장하는 것도. 속아주는 것도 내가 즐겁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다 용서가 되는걸. 음식은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