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로니에 Dec 25. 2021

프랑스 외인부대의 크리스마스 가족 행사

마지막 크리스마스 행사를 마치고

올 12월 중순에 크리스마스 가족 행사가 토요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행사가 잡힌 후 5차 유행이 오면서 확진자가 5만 명을 넘어가자 부대에서는 수요일 평일로 행사를 이동했고 매시간마다 인원을 정해서 선물을 받도록 계획을 변경했다.

 

파리 모병소의 경우 군가족들이 함께 모여 뱅센에서 서커스 공연을 보고 부대로 돌아와 행사를 진행한다.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도 찍고 아이들에게 선물도 나눠준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연대장과 아이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내들끼리 혹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코로나 이후 부대 행사가 간소화되었다. 심지어 올해는 같은 공무원 주택에 사는 친구들도 다들 다른 시간에 분배되면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인부대 마담들(아내들) 모임은 없었다.

그래서 과거의 크리스마스 부대 행사 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진을 보니 많은 사건 사고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 말이다.

1800년대에 지어진 파리 모병소
외인부대 아내들의 노엘 파티. 아내들을 위해 부대에서 선물을 준비하고 부인들도 작은 선물을 준비해 교환한다.

남미 아마존 기아나 3년 파병을 마치고 프랑스 본토로 돌아와 처음 참석하는 행사날 나는 도시의 분위기가 좀 낯설었다.

파리 모병소의 아내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주 대화 내용이 회사 이야기들이 많다.

'나는 어느 지역에서 근무하네 어디 회사에서 근무하네 등등'

확실히 도시라서 여자들의 사회 활동도 활발하다.

시골에서 살다 온 나는 빨리 직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남미 기아나 3 연대의 노엘 마담들 행사 사진을 찾아보았다.

참 바람 잘랄 없던 3년이었다.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163개국의 외국인들이 모여 있는 외인부대.

다양한 문화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들이 많다.

다양한 인종이 한 곳에 모여 감동을 줄 때도 있다.

정말 강한 정신력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해가 도통 안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내가 다양한 국적의 마담들(아내들)과 어울리면서 느낀 점이 있다.

여자는 전 세계를 막론하고 질투가 심하고 뒷담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엔 친구라며 매주 모여 술을 마시더니 결국은 삼자대면하고 싸우고 욕하고 인연이 끝난다.

한 두 그룹이 아니다. 프랑스 여자들도 브라질 여자들도 루마니아 여자들도 늘 시끄럽다.


이럴 때 A도 날 자기 집에 부르고 B도 나를 초대한다. 한마디로 자기편이 되어 달라는 소리다.

나는 그들 싸움에 관심도 없다. 그리고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차라리 연대장 부인이나 부연대장 부인을 불러 하소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나라별로도 문화도 다르다.

동유럽인들끼리도 인원이 많다 보니 패가 갈린다.

브라질은 더 심하다. 본인이 스스로 소개하길 "나는 브라질 남부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대학을 나왔고 좀 부유하다는 소리며 나는 무식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브라질 사람이다"라고만 말한다면 북부 사람들이다. 브라질도 남부와 북부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북부 사람들은 피부가 남부 사람들에 비해 더 까맣고 성질이 고약하다. 이건 많은 브라질 여자들을 겪어본 내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이다. 여자들끼리 주먹싸움을 하고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부와 북부 여자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네팔 사람들은 자기 민족끼리 엄청 챙겨준다. 그리고 국경일이나 축제가 중요하고 늘 네팔인들끼리 모여 축제를 벌인다. 새벽이건 시간에 상관없이 단체로 노래를 불러댄다.

그래서 우리들끼리 하는 말로는 네팔인, 브라질인, 폴리네시아인 이웃이 걸리면 그 집은 '끝났다.'라고 말한다.

늘 음악 소리, 축제 소음으로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을 불러 싸우는 모습도 봤다. 그러나 경찰도 조용히 해달라는 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결국 외인부대원들 간에 사이가 안 좋아진다. "네팔 친구들은 우리 축제날에 우리가 노래 부르겠다는데 뭐라고 한다며 우리 문화라고 화를 냈다." 나는 밤에 이웃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자기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브라질 이웃들 덕분에 새벽 내내 음악소리는 늘 듣고 살았던 듯하다. 현재 파리 근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폴리네시아인 이웃은 주말마다 파티는 왜 그리 자주 하는지 다음 날 낮까지 요란하다. 모든 문을 다 활짝 열고 요란하게 음악을 트는 사람들은 남미 출신 이웃들이다.


참 재밌다. 민족성이라는 거. 문화라는 거.

나한테는 민폐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데 말이다.

그들은 눈치도 없고 민폐라는 것도 모른다.

그저 자유, 권리, 문화라고 떠들어댄다.

 


기아나에선 아마존에 갇힌 군가족들을 위해 행사나 클럽 모임이 잘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만의 공동체가 강했다.

남편들은 일 년의 절반은 정글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 가족들이 더 끈끈하게 서로를 챙기고 도와줬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아마존까지 갔는데 남편이 없자 여자들이 바람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정글로 남편이 훈련 나간 사이 파티에 참석했던 여자가 다른 군인과 바람이 났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자기 나라로 쫓겨났다. 남자가 열 받아서 여자와 아들을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간호사인 프랑스 여자는 부대 오토바이 모임 1박 2일 여행을 갔다가 다른 군인과 눈이 맞았다.

여자는 부대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혼 후에도 부대의 헬스장을 계속 드나들었다.

(가족들도 돈 내고 등록하면 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

그의 전 남편은 자기의 권한을 사용해 바람난 아내를  '부대 출입금지' 시켰다.


내가 애들 태권도와 하와이 댄스 클럽에 데려다주러 부대에 갔을 때, 정문에서 그 프랑스 여자를 본 적도 여러 번이다. 여자는 바람 난 미혼 군인을 만나기 위해 부대 앞에서 남자 친구를 기다렸다.

전 부대원이 다 아는데도 그들은 창피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베컴 부인 빅토리아를 닮은 프랑스 여자는 가끔 나를 만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오겠노라고 인사를 하곤 했다. 같은 해에 기아나에 도착했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마담이다.

여자는 어차피 전 남편과는 이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아니었다고 언젠가는 이혼했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누구 편도 들 수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밖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이혼한 여자는 새 집을 얻어 떠났고 남자 친구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아나에 남았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새로 만난 사람과도 헤어지길 여러 번 반복해서 남미에 있는 3년 동안 끊임없이 스캔들을 달고 다녔다. 지금은 그 남자와 완전히 헤어졌다고 한다.


나의 이웃은 첫 번째 미션 때 기아나에 있으면서 브라질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프랑스 본토에서 몇 년 살다 다시 기아나에 파견 왔다. 그리고 여자를 만난 이곳에서 다시 그녀와 이혼했다. 이번엔 남자 쪽에서 바람을 폈다.


이혼을 당한 여자는 앞서 말한 프랑스 간호사와 같이 어울려 다니며 나이트클럽을 다녔다. 둘 다 이혼한 상태였으니 자유로웠다. 그리고 절친의(프랑스 간호사) 전 남편(전 부인을 부대 출입 금지시킨 그 남자)과 눈이 맞아 그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부대원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는데 정작 그들은 복수인지 사랑인지 모를 그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았다.

멘탈 갑이다.


프랑스 군인들의 파견이 많아서 군가족의 40%가 이혼한다. 공식적인 숫자이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짐 싸고 떠나는 마담들을 (여자들) 많이 봤다. 어린 두 아이 심지어 갓난아기를 데리고 본토로 돌아가거나 여자 친정이 있는 자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싸워서 떠났다가 기아나로 다시 돌아와 합치는 경우도 봤다. 장교든 병이든 계급에 상관없이 일어났다. 그만큼 군가족의 스트레스는 많고 상황은 불안하다. 외인부대뿐만 아니라 육군 해군, 소방대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중국 마담의 경우 첫째 아이가 누가 봐도 혼혈이다.

아빠도 엄마도 중국인인데 말이다. 문제는 둘째 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누가 봐도 중국 아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백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낳은 아이라고 수군댔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군인은 아프리카에 파견 갔다 만난 현지 여자와 결혼을 했다.

다른 부대원들은 분명 여자가 프랑스에서 살기 위해 체류증 때문에 남자를 이용하는 거라고 했지만

그는 사랑이라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여자는 갓난아이를 두고 도망갔고 군인 남자는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근무시간 중에 군복을 입고 나와 학교에서 아이를 찾곤 했다.

외인부대원들이 외로워서 그런지 파견만 나가면 여자들을 잘 만난다. 의심 없이 말이다.


내가 남미 기아나를 떠나기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마담 행사 때에도 별말 없던 친구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차로 5분 거리인 그녀의 집에 바로 도착했다. 거실에는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었다. 떠난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평소에도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데 며칠 전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바로 군 경찰을 불렀고 군 경찰이 그를 타일러 칼을 뺐었고 우선 그를 부대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 모든 상황은 연대장에게도 보고되었고 친구는 남편 소속 중대장 부인과도 이미 통화를  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는 남편의 동료가 맞는지 당황했다. 몇 년 동안 본 그녀의 남편은 말없이 성실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둘만 알기 때문에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며칠 후 떠난다는 친구가 걱정되었다. 그것도 두 아이를 데리고 말이다. 그녀가 그동안 겪었을 불안과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친구는 나를 돌려보내며 노엘 때 가족들이 먹으려고 샀다며 오리고기를 나에게 주었다.

어차피 떠날 때 다 버려야 한다고 이것저것 싸주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부대원들도 이 일로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근무 태도도 좋았고 성실한 군인으로 평가받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친구는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남편이 본인 카드를 정지해서 당황했지만 다행히 현금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친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심신의 안정을 찾고 옷가게에서 일도 하며 평온을 찾았다고 연락을 주었다.


기아나의 생활이 끔찍해 매일 불면에 시달리다 루마니아로 돌아간 친구도 기억난다.

떠날 날을 기다리는 동안 집안에 수도가 터져 물세가 2천 유로가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두 아이와 대형견 1 마리를 데리고 남미 기아나에서 루마니아까지 3일을 꼬박 길에서 보내야 하지만 그래도 자기 나라로 갈 거라고 울먹이던 친구였다.

떠나기 전날 밤 우리 집 앞에 와서 나를 꼭 끌어안고 작별 인사를 나눈 친구이며 지금도 한결같이 페북 메시지로 행운의 편지를 보내주는 친절한 친구다.


기아나에 도착하자마자 부부싸움을 하고 집 앞에서 총을 쏜 여자도 갑자기 생각난다.

밤에 자고 있었는데 총성이 들렸다. 길거리까지 나와서 술 취한 남녀가 소리를 지르며 싸워댔다.

다음날 부대에는 소문이 쫙 퍼졌고 전날 동네 시끄럽게 한 남녀가 군가족인 걸 알았다.


남자가 면 여자도 세다. 심지어 외인부대 아내들 중 여군 출신이나 군경찰 출신도 많다.

파견 나가서 사랑에 빠진 경우 대부분 같은 국방부 소속의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고 약 알레르기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 마담도 생각난다. 다섯 아이를 남겨두고 말이다.


기아나는 딱 반반이다.

나처럼 너무 싫다는 사람과 너무 좋아서 파견을 여러 번 가는 사람들

로덩 연대에서 미스 캐피 블렁으로도 뽑혔던 루마니아 친구는 세 번째 파견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 친구가 두 번째 미션을 왔을 때 기아나에서 만났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통해 변하지 않는 70년대와 같은 기아나의 모습을 매일 보고 있다.


 <12월 24일 외인부대원 전통 행사>


<전체 마담들 행사와 남편 계급별 마담들 행사>

루마니아, 브라질, 프랑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폴란드 마담<>
브라질, 모로코, 러시아, 프랑스, 튀니지, 에콰도르, 네팔 마담들
마담들을 위한 선물. 다양한 언어로 "레지오네흐(외인부대)" 라고 쓰여 있다. 

<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가족 행사>

아이들의 선물에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다. 어리면 어릴수록 부피가 크고 11세까지만 선물이 주어진다.
남미 기아나 연대의 산타는 소방차를 타고 등장하거나 스카이 다이빙을 하며 하늘에서 내려온다.


좋은 추억도 많은데 오랜만에 친구들 사진을 보니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떠오른다.

오늘은 정말 투머치다.


이젠 다 뿔뿔이 흩어져서 만날 수도 없다.

외인부대 코르시카 섬, 까스텔 로다리, 까르까손, 로덩, 오바뉴, 마르세이유, 아비뇽 부대와 자기 나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다. 이젠 그저 페이스북 사진이나 보며 안부를 묻는 정도다.


갑자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지는 밤이다.


죠아유 노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