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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마레지구에서 놀기

서울-파리 청년작가 교류전 + 이응노 레지던스 전시

by 마로니에

지난 토요일 오후에 파리 3구 마레 지구에 있는 편집샵 메르씨 Merci로 향했다.


오랜만에 햇볕이 내리쬐는 기분 좋은 오후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예쁜 건물도 보이고 사람들도 거리에 바글바글했다.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데 내 앞에 오토바이 두 대가 서더니 오토바이 운전자끼리 비쥬를 하며 인사를 한다.

" 어머~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 어떻게 지냈어? 여기서 만나네? 넌 어디가?"


신나게 수다를 떠는 두 여성을 보니 헬멧부터 옷, 프라다 갈색 롱부츠까지 멋들어지게 걸친 것이 진정한 파리지엔느처럼 보였다.

파파라치 컷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신호가 바뀌면서 그녀들이 떠났다. 순간 포착을 하지 못해 아웠다.


메르시 건너편 11구 '성스러운 세바스티앙' 길. (세바스티앙은 신부님의 이름이다. 프랑스는 사람이름으로 이름 짓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아는 세바스티앙한테 사진을 보내주니 아주 멋진 길 이름이라며 좋아했다.


길 건너에 약속 장소인 메르씨 카페가 보인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길가에 벼룩시장(라 브로껑트 La brocante)이 쫙 펼쳐져 있었다. 하필 신호등 앞 진열대에 구찌, 프라다, 입생로랑 중고백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구찌 백 안에 정품 코드를 확인하고 가격을 문의하니 400유로란다. Vestiaire collective 사이트보다 훨씬 싸다.

"생각해 보고 다시 올게"

잠깐 고민했다. 이번 달에 회사 VIP 바겐세일 (브라드리 la braderie)해서 이미 500유로치 옷을 샀다.

'백은 다음 쏠드 기간에 깨끗한 거 사자' 하고 미련을 버렸다.


이런 중고시장이 꼭 저렴한 건 아니다.

벼룩시장을 자주 보다 보면 늘 보이는 것이 버버리 트렌치코트다. 기본 300유로에서 시작하는데 정말 널렸다. 안 파는 벼룩시장이 없을 정도로 기본 아이템이다.

근데 이름 없는 빈티지 코트도 기본 300유로라는 게 문제다. 헌 옷 쌓아놓고 너무 비싸게 판다.


나는 이것저것 구경하며 긴 벼룩시장을 끝까지 다 봤다.

사실 나는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할 예정이었다. 메르씨 카페 안 인테리어가 중고 서적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벼룩시장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송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먼저 도착했다고.


후다닥 카페로 달려갔다. 송 기자는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미리 와서 메르시 구경을 했다고 한다.

이태리 돌로미티 여행 얘기도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김 교수님이 예약한 스페인 음식점 까브 쌩 질(Caves Saint Gilles)에 도착했다.

이 골목을 여러 번 지나갔는데도 이 음식점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빠엘라도 먹고 예쁜 식당 사진도 찍었다.

공연이 있었다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식사 후 강 작가님 전시를 보러 떵플가(Rue de Temple)로 향했다.


저기 전시장이 보인다.

"앗! 나 여기 이미 와봤는데~ 여기서 하는구나"

우리는 안에 들어가서 샴페인을 마시며 작품을 구경했다.

교수 언니는 "신기하다. 한 작가가 그런 것 같아. 어떻게 여러 사람이 이렇게 비슷하게 그렸지?"


나는 두리번두리번 강 작가님을 찾았다.

'저기 통로를 지나면 다른 공간이 있나?'

없다.


그때 언니가 "잘못 온 거 아냐? 맞은편 아냐?"

나는 구글맵을 다시 확인했다. "여기 맞는데"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여기 아니면 어떡하지? 샴페인도 얻어 마셨는데 어떡하지?"

혹시 몰라 갤러리 밖을 나가 간판을 확인했다.

그렇다.

여기가 아니다!!!


여기는 20번지 SEE 갤러리가 아닌 Sabine 싸빈 갤러리였다. 맞은편을 봤다.

거기도 오프닝 파티를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같은 날 저녁에 두 갤러리가 동시에 오프닝 파티를 한다고? 이게 무슨 드라마 같은 일이야?


샴페인을 홀짝 홀짝 마시며 언니에게 물었다.

"저쪽 간판에 갤러리 이름 보여?"

"아니 안 보여. 어떤 남자가 딱 그 앞에 서 있어"

길거리에서 샴페인을 다 마셨을 때 즈음 맞은편 갤러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찾던 그곳이었다.


이렇게 또 배웠다. 누구나 오프닝 파티에 들어가 샴페인을 얻어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죄송, 일부러 그런 거 아님)


미안해서 이 전시 소개도 함께 올린다.




이번 전시는 서울-파리 청년작가 교류전이라고 한다. 여러 명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파리와 서울에서 전시를 하는데 이날 저녁 파리 전시 베르니사쥬 (Le vernissage),오프닝 파티에 방문했다.


전시 주제는 [시간의 미로]이며 여러 작가들이 함께해서 작품의 성격도 다 달랐다. 한국인,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과 일본인 작가 작품도 있었다.

박재광 작가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 후 만화 공모전을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김선 작가의 왼쪽 작품은 작가가 2002년 어렸을 때 그렸던 작품이고 오른쪽은 20년이 지난 2022년도에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조주원 작가는 자아의 표현을 춤 무용 등으로 표현해 AI 기술과 전통 드로잉 기법을 병행한 인쇄물을 선보였다.

특이하다.


안영 작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을 때 위로해 준 고양이들을 작품에 담았다. 디자인 공모전을 수상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이 작가는 분명 유럽 사람일 거야' 나는 확신했다. 나는 유럽 아동작가의 그림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묵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동양적인 묵과 붓으로 완성한 유럽 삽화???'

이 사람 뭐지?

그래서 강 작가님한테 물어봤다.

"감만지 작가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이란다. 깜짝 놀랐다. 나중에 보게 된 전시 책자를 보니 홍대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와 너무 독특하다."


이번에 벽돌인가? 아니다. 스티로폼을 벽처럼 표현했다. 일본인 작가 히사코 이히라 Risako Ehara 는 전통적인 프레스코 복원 기법을 사용해 예술의 근원인 벽화를 표현했다고 한다.


이날 전시 책자를 보고 알았다. 강 작가님의 나보다 언니라는 것을. 마르세이유 미술학교를 졸업한 강상미 작가님에게 작품 설명을 부탁했다.


인간과 신의 세계 그 경계선에서 아이들을 품고 있는 엄마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우리 마을 위에 그들이 산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생겼다 사라지는 이야기들은 있다. 길을 잃었는데 애초에 목적지가 없었고, 출발지 또한 모호해진 지 오래 기 때문에 길을 잃은 건지도 모르는데서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덩어리들이 시간과 공간이 마구 섞이는 불안한 세계를 탐험한다.


어느 날 문득 세상에 던져져 예측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는 덩어리체들은 형상이라기보다는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가깝다. 잊혔다가 부끄럽게 소환된 기억, 꺼내기 싫은 감정, 언어화되기 어려운 꿈의 조각, 알려지지 않은 신화, 기묘한 이야기들에서 영감을 받아 시적, 동화적으로 사유하여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강 작가님 헤어스타일이 작품 속 주인공과 같다.

귀여우셔라 ㅋㅋㅋㅋㅋ




전시를 보고 남은 수다를 떨기 위해 카페를 찾던 중 김치통을 발견했다.

59유로짜리 프랑스 뷔페집에서 말이다.


"언니 여기 호텔 레스토랑 가봤어? 나 작년에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 여기서 했는데 정말 핫해"

밤 11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아이들이 어느덧 청소년이 되니 엄마도 덜 찾고 내가 여유 시간이 많아졌다.

나 안 찾는다고 섭섭해하지 말고 내 인생을 즐겨야겠다.


건물에 낙서도 예술이 되는 곳. 이곳은 파리다.



며칠 지나 또 다른 전시에 후다닥 다녀왔다.

파리 3구 마레 지구에 오흐-샹 갤러리 ( Galerie Hors Champs)가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점심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파리 이응노 레지던스 10회 전시로 선출된 작가들이 3개월 동안 파리 인근 이응노 레지던스에서 머물며 완성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첫 번째 작가는 자연을 그린 이시온 작가이다.

두 번째는 이강욱 작가

세 번째는 박효정 작가

벽을 채운 꿈의 도시


마레지구 안에 갤러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 길거리에 옷가게만큼 한 길에 갤러리가 두세 개씩 있을 정도다. 게다가 전 세계 체인을 둔 갤러리들도 많다.


마레에서 일한 지 3년이 되었다. 내 회사 서랍에는 갤러리맵이 있다. 입사 첫 해에는 점심 식사 후에 도장 깨기처럼 하루에 두 개 갤러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에 산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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