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하얏트 호텔
어느 날, 나의 디렉터인 이태리 사람 죠바니가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두 명의 이태리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 친구 아이들이야. 이번 여름에 한국에 여행 다녀왔데. 너 이 옷 알지? 이 애들 엄마가 한국을 너무 좋아해"
죠바니는 나만 보면 비빔밥, 볶음밥을 얘기한다.
"자기 친 여동생은 올여름에 있는 파리 BTS 콘서트 티켓을 구입해서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6년 만에 파리 공연이라며 여동생은 이태리에서 콘서트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올 예정이란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열리는 한복 대회를 죠바니에게 알려줬다. '한국을 사랑하는 여동생과 친구의 아내에게 알려주라'라고 말이다. 1,2,3등은 한국에 초대된다는 중요한 조건도 말했다.
그리고 내 한복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한복이 없다.
사실 입을 일도 없고 부피도 커서 보관하기 힘들다.
만약 내가 한복을 입게 된다면 최소 17년만에 입는 거다.
오래도 됐네...
프랑스 관련 SNS에 매년 이 대회가 소개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이번엔 왠지 눈에 거슬렸다.
"나도 한번 해볼까? 내 나이 만 45 세에 모델 대회가 말이 되나? 유럽에 한복을 알리기 위한 행사인데 한국인이 신청해도 되나? "
대한민국 한복 모델 대회 한국 본선 대회를 유튜브로 찾아봤다. 본선에 60대로 보이시는 분이 보였다.
"어? 접수라도 해볼까?"
프랑스 사이트에서 얼굴 사진, 상반신 사진을 업로드하고 참가비 50유로 (한복 대여비)를 결제했다. 참가하지 못할 경우 한복 대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50유로를 자동 환불해 준다고 했다.
50유로까지 결제를 완료해야 대회 신청이 완료된다.
생년월일도 입력했지만 키나 몸무게를 기록하는 칸은 없었다.
며칠 후 나는 합격 소식을 메일로 받았다.
헤어와 메이크업, 신발은 각자 준비 하되 심사에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화장을 잘하고 머리 장신구가 있어야 한복과 조화로워 더 예뻐 보이지 않을까.
심지어 이날 입은 한복도 심사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포즈, 표정, 분위기가 심사 기준이 된다고 했다.
나중에 대회를 끝내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본선 진출자들을 보니 화려한 액세서리가 없어도,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아도, 한복과 어울리지 않는 커트머리도, 머리에 히잡을 썼어도, 나이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심사위원들의 기준으로 선택됐다. 대단히 미인형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대회에 참가 신청할 수 있다는 소리다.
대회 당일, 2026년 3월 7일 파리 하얏트 호텔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아침 8시 집합했다.
본선 무대에 진출한 사람은 90 명이었고, 총 386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날 본 한국인은 총 6명이 있었다.
자! 행사장으로 가실까요?
호텔 복도에 소개되고 있는 이번 행사 광고
정사무엘 협회장은 대회 역사와 한복 디자이너 선생님들을 소개했다. 잔잔하게 유머를 던지셨는데 이해하고 웃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오늘 노래나 춤, 개인기를 선보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워킹만 하면 됩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프랑스인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패션쇼는 '워킹'만 하니까 말이다.
이건 그저 문화차이다.
정 협회장은 "작년에 본 얼굴들이 올해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떨어졌던 친구들이 올해도 도전한 모양이다. 나는 충분히 이해된다. 50유로에 이런 퀄리티의 한복을 입고 사진과 추억을 남길수 있다면, 그리고 한국에도 갈 수 있다고?
워킹 동선을 설명 듣고 번호 순서대로 리허설을 진행했다.
90명의 후보 중 40명만 이날 저녁에 있을 본선 대회에 진출한다.
대기번호 1-50번까지 1그룹으로 먼저 한복을 입고 심사를 받았다. 1그룹이 심사 후 환복 하면 2그룹이 한복을 입게 된다.
각 디자이너 선생님별로 한복이 마련되어 있고 한 줄로 서서 기다리면 선생님이 각자에 어울리는 옷으로 입혀주신다. 우리가 한복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나는 최숙헌 우리옷 한복을 입게 되었다.
내 피부색과 잘 맞는 분홍색 당의를 입혀주셨고 내 커트 머리를 되도록 안 보이게 실핀으로 무조건 꽂아서 뒤로 넘기라고 알려 주셨다.
한복을 입은 후 나는 무척 분주했다. 한복이 무슨 색일지 알 수 없었기에 다양한 립스틱과 색깔별 액세서리를 준비해 갔다. 가져온 실핀과 꽃장식 머리핀을 꼽고, 립스틱을 바르고, 액세서리를 착용했다.
처음이라 몰랐다. 미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갔어야 내 상태를 보고 선생님이 한복을 입혀주셨을 것이다. 아예 행사장 도착하기 전에 헤어 메이크업이 완성되어 있어야 했다.
워킹 심사를 받았다. 다들 어디서 포즈를 배우고 왔는지 한국 무용 수준으로 멋스럽게 포즈를 소화했다.
무대 뒤에서 다들 긴장하고 벌벌 떨더니 무대 위에선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딱 명 더 있었다. 나는 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좋은 추억과 경험, 예쁜 사진을 남겼으니 집에 갈 준비를 했다. 12시 발표시간을 기다리며 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참고로 점심은 제공되지 않는다.
12시 집합 시간에 다시 모였다. 본선진출자 명단이 호명됐다. 진출자 40명은 버스를 타고 에펠탑 앞으로 이동해 조별, 개인, 단체 사진을 촬영하여 이 점수를 합산해 본선에서 상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 본선 행사 전에 이미 1,2,3 등이 결정된다는 소리다.
작년 한국 대회 진,선,미 로 선출된 세 분이 프랑스 대회에 초청되었다. 프랑스 1,2,3 등도 6월에 있을 한국 본선 대회에 초청된다.
나를 비롯한 50명의 탈락자들은 짐을 싸서 대회장을 떠났다.
호텔을 떠날 때 한 여자는 "내 포즈가 좀 이상했던 거 같아. 이때 이렇게 해었었어야 했는데..."
"나도 걸을 때 한복을 밟았어. 너무 아쉬워" 라고 울상을 지었고 얼굴은 패닉 상태였다.
나는 "잊어버려! 잘 준비해서 내년에 다시 와"라고 말했다.
"그래 내년에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며 그녀들과 헤어졌다.
나는 다시 이 행사에 재도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대신 우리 딸이 18세가 되면 출전시켜야겠다.
내가 직접 경험해 봤으니 주변에 이 행사를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복을 알리기 위한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해 주셔서 감사하다.
프랑스 접수 사이트
한국 대회 접수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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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헌 우리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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