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긴 한다

by 혜인

월요일 아침, 몸 곳곳에 두드러기가 났다. 갑작스러운 증상에 당황했지만 저녁쯤이면 가라앉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엉덩이와 골반 위주로 피어 있던 두드러기는 잠잠해지기는커녕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붉은 자국들로 얼룩덜룩해진 팔과 다리를 마주하고 나니 점점 겁이 났다. 새벽이 되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에 다음날 밥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약을 사러 가는 길도 순탄하지가 않았다. 날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서늘한 추위와 싸웠고, 귀찮은 마음에 대충 슬리퍼를 신고 걸은 탓에 발에 상처를 얻었다. 고작 약국에 다녀왔을 뿐인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었다.


몸이 무너지니 마음도 쉽게 무너졌다. 자꾸만 스스로를 불안 속으로 내던졌다.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빈대도 없고(처음에는 베드 버그에 물린 건 줄 알았다), 병원도 쉽게 갈 수 있고, 무엇보다 나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말 그대로 '혼자'라는 사실이 외로운 걸 넘어서 무서웠다. 이제는 모든 것을 오로지 홀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다행히도 고작 두드러기였을 뿐이지만, 혹시라도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아픈 거였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을까? 그냥 전에 살던 홈스테이 집에서 학교를 다닐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래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그리고 이 감정들을 기록해두기 위해 다이어리에 글을 쓰다가 울었다. 돌연 코끝이 찡해져 오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바탕 울고 나니 이번엔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 나는 아직도 어리고 나약하구나. 그래도 전보다는 단단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우뚝 서기에는 한참 멀었구나. 그때까지 가라앉지 않았던 두드러기를 보며 최악의 일주일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몸과 마음이 온통 지쳐버렸으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도 아니었다. 약도 먹었겠다,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니 두드러기는 말끔히 사라졌다. 기분은 여전히 롤러코스터 같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며 나름대로 알찬 일주일을 꾸렸다. 겨우 며칠 전의 일이지만 몇 달 전의 일처럼 멀다. 이렇게 쉽게 지나가는 일을 그렇게 걱정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틀 동안 겪었던 소요를 곱씹으니 잊고 있었던 상처가 떠오른다. 3주 전 어느 날,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순진하게 약속을 잡았다가 곤란을 겪은 것이다. 싫다는 의사를 더 단호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자꾸만 스멀스멀 떠오르는 기억을 외면하기 위해 정신없이 샤워를 하다가 실수로 욕실 행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행거에 그대로 얻어맞은 바람에 골반에 커다랗게 멍이 들었다. 난데없이 크게 자리한 상처를 한동안 넋 놓고 바라봤던 것 같다. 처음으로 겪은 류의 익숙해지지 않을 이 불쾌함이, 아주 오래갈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 기억은 옅어졌다. 워낙 심하게 들었던 탓에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그 검붉은 상처 역시 지금은 말끔히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자국이 선명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결국 지나가기는 한다. 물론 이 말이 내 모든 불안감을 쓸어내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바라본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는, 이 서투르고 무른 시간들 또한 지나가기를. 얼마나 지나야 더 단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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