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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반정치적 결단

건대교지 128호 | 헌재판결을 앞두고.

by 정호익


윤석열 대통령은 왜 계엄령을 ‘결단’했을까. 대통령은 결단이라는 단어를 자주 구사했다. 정치학자 경희대 안병진 교수는 이러한 결단주의가 민주주의와 상극이라고 지적한바 있다.1) 민주주의는 다양한 세력들이 논쟁하고 타협하며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윤대통령은 갈등적 합의 과정보다는 역사적 소명에 따른 자신의 카리스마적 결단을 강조했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에 갈등하기 나름이고 그 속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정치의 문법이다. 그러나 유무죄를 가려 나쁜 놈을 때려잡으려 된다는 것이 검사 출신으로서 그의 통치관이었다.

30여 년간 미국 대통령의 자문역을 맡았던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핵심 덕목으로 ‘설득력’을 꼽았다. ‘프레지던트’라는 대통령의 직함은 회의를 주재한다는 ‘프리사이드 (preside)’에서 비롯되었다. 대통령은 소통과 설득을 통해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반대 길을 갔다.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의회와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고, 용산 대통령실은 여당 당무에 과도히 개입하며 건강한 언로言路를 틀어막았다. 대통령은 생각이 다른 집단을 반국가 세력 또는 배신자로 규정지으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 결과 음모론에 빠져 의회에 군을 동원하는 무모한 결단을 내렸다.

물론 오늘날 한국 정치의 비극은 윤석열 개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양당 정치인들 간 적대감은 심화되어 왔다. 우리 편이 집권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정계를 지배했다. 진영을 둘러싼 시민의 정서적 양극화도 심화됐다. 건국대 김성연 교수가 2010년대 이후 세 차례 대선을 분석한 결과, 유권자들의 상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은 꾸준히 그리고 큰 폭으로 증가했다.2) 상대에 반대하기 위한 정치, 그에 기반한 ‘적대적 공생’ 정치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에 기초해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규범은 사라졌다.

우리는 이미 2017년 탄핵 정국을 겪은 바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탄핵 절차가 이뤄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탄핵 정국은 우리 사회에 어떤 생채기를 남겼고, 한국 정치는 질적인 전환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은 달라야 한다. 2025년 탄핵 정국은 정치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방향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승자독식과 적폐 청산의 결과보다, 연합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중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이뤄내려면 제도 개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적 덕성(virtue)이 중요하다. 관용과 절제의 가치에 바탕하여, 함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민주‘공화’국에서 공화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 볼 시점이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소통과 합의의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다양성 속에서 최선의 합의, 최대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에 정치의 미학이 있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존재(대통령)’가 정치를 짓밟은 오늘날, 우리는 다시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누군가의 목을 자르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혁명이 아니라, 생채기를 치유하며 질서를 바로 세우는 개혁의 시간이 열려야 한다.



1) 안병진, “검찰 통치와 포퓰리스트 헌정주의”, 동향과 전망 (119), 9-42, 2023.

2)  김성연, “한국 유권자들의 이념적 정렬과 정서적 양극화 : 18대, 19대, 20대 대통령 선거 분석 결과”, 한국과 국제사회 7(6),

1003–10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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