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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반경 넓히기.

장대익, <공감의 반경> 북리뷰 (건대교지 129호)

by 정호익

*해당 글은 건대교지 129호(2025년 가을 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읽다] 장대익, 『공감의 반경』, 바다출판사, 2022





어느 때보다 분열된 공동체. 과연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책 『공감의 반경』은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감’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을 분석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공감력을 증진시키면서 공동체를 확장하고 문명을 일구어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 사회는 공감이 부족해서 이토록 갈등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내집단을 향한 공감의 구심력이 너무 강해서, 외집단을 향한 공감의 원심력이 제약되고 있는 상황을 문제 삼는다.


정서적 공감은 공감의 구심력에 해당한다. 이러한 감정은 인류의 오랜 도덕 본능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소속 집단에 강한 종속감을 가지며, 일상적 판단은 부족사회 당시에 형성된 직관에 근거해 이뤄진다. 한 개인은 소속 집단의 규범에 어긋난 행동을 목격했을 때 ‘역겨움’을 느끼는데, 이는 고약한 냄새를 맡았을 때 이맛살을 찌뿌리는 것과 같은 반사적 반응이다. 이러한 도덕적 직관은 부족 공동체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에 바탕한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근친상간에 대해 역겨움을 느끼고 낯선 이로부터 불안감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경우에 따라 현대 문명의 윤리관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정서적 공감을 넘어선 인지적 공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인지적 공감은 즉각적인 감정에 따라 도덕 판단을 내리기보단, 조금 더디더라도 타인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 회로가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우리는 저마다 추천 알고리즘 필터에 갇혀 살아간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놀지 않고 학교는 토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많은 현대인들은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외로움에 노출되어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외로운 개인일수록 소속감을 채우기 위해 정치 이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탁하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 정치적 극단주의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유전자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환경 조건에 따라 유전자의 스위치는 다르게 켜진다. 개인은 어떤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지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형성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지적 공감 회로를 작동시킬 수 있는 환경 조건이다. 우리는 각인된 본성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다른 선택을 만들어 구성해 나갈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외집단과의 접촉·교류가 적정한 조건에서 확대된다면 공감의 반경을 넓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해야 다양한 시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문명이 관성적 알고리즘에 굴복할 것인지, 보다 포용적이고 다채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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