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이 걸려 리시케시에 도착하다
우리는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서 나란히 대한항공 비행기에 탔다. 뱃속을 타고 흐르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반면 만화 볼 생각에 마냥 신이 난 깍두기.
이륙도 하기 전에 헤드셋을 끼고 만화부터 트는 너.
그 옆에서 조용히 기념 셀카를 찍어보았다.
한차례 식사가 나오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곧 비행기에 불이 꺼지고 모두 자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한 길 인생 깍두기. 보고 또 보고.
깍두기는 집중력이 강한 아이였다.
엄마가 옆에서 자다 깼는지 사진을 찍는지 관심 전무하다. 만화가 많지도 않고 딸랑 세 편 들어있었는데 계속 반복해서 봤다. 그리 만화가 고팠던게로냐...?
한동안 어두웠던 기내에 불이 켜지고 승무원 언니들이 샌드위치 간식을 나누어 주셨다. 기내식을 꽤 잘 먹길래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어 내심 기뻤다.
결국 아홉 시간 반이라는 비행시간 동안 1분도 자지 않고 만화 영화 각종 어린이 게임 등을 즐기시며 델리에 도착하신 분. 2014년생 말띠 여성!! 대단하다!!!
나는 그런 그녀 옆에서 네 번을 자고 깼다.
만화를 보는 깍두기 옆에서 심심해진 나는 애꿎은 지도 그림을 하나 그려보았다. 이렇게 그림 그리는 순간에 내가 꽤 멋진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막상 다 그리고 나면 풉하고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이날은 비행기가 어두컴컴해서 그런지 두 명의 승무원 언니들이 (두 명이나!) 내 그림을 멋지다고 칭찬해주셨다. 정말이지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남의 그림은 다 멋져 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창 밖...
아홉 시간 만에 드디어 아래로 보이는 반짝반짝한 불빛들.
델리다!!!
내리기 직전에는 기내방송이 잦아 만화를 꺼야 한다고 했더니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주는 깍두기.
인도는 이제 우리나라와 Visa on Arrival(도착비자)이라는 제도를 두어서 무비자로 그냥 입국해도 공항에서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저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도 왔다 갔다 하시더니 좋은 제도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e-visa를 받느냐 visa on arrival로 하느냐는 본인 선택인데 visa on arrival비용이 조금 더 저렴하다고 한다. 단, 이 제도가 시행 중인 나라(일본과 한국)의 입국인원이 많을 경우 차라리 e-visa가 빠르다고 한다. 3월 1일, 한국에서는 모든 게 새로이 시작되는 달이어서인지 여행객이 많지 않았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아홉 시간 넘는 비행과 각종 기다림에 보챔이 없었다. 모든 걸 재미로 느끼는 듯 싶기도 했고 깍두기도 나름 긴장을 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럴 때 보면 꽤 의젓하고 고마운 꼬맹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수많은 택시기사들이 이름판을 들고 서있었다. 인도는 아예 바깥공기 쐬는 밖으로 나와야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그걸 몰라서 공항 안에서 한 시간 넘게 헤매고 다닌 기억이 있다. 금세 내 이름을 찾았고, 인상이 서글서글해 보이는 그와 통성명을 했다. 과천에서 요가원을 하시는 나의 숙모님께서 5년 전쯤 묵었던 리시케시 숙소의 사장님을 소개해주셨고 그가 보내준 택시였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 여기는 다른 나라가 아니고 인도. 택시나 릭샤.....길 모르는 여행객의 모습으로 쉽게 사기를 당할 수 있으므로 조금 조심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와 동행이라 평소보다 좀 더 안전 확보에 신경을 썼다.
깍두기는 위 사진에 보이는 택시를 타자마자 누워서 기절한 듯 잤다. 매캐한 매연냄새, 뿌연 거리의 모습들.... 쉴 새 없이 들리는 경적소리... 그렇구나 델리구나. 이 곳에 다시, 왔다!
전직이 카레이서로 의심되는 택시기사는 6시간 만에 우리를 리시케시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매의 눈으로 택시기사의 안전운행을 주시했고 피곤했던 깍두기는 리시케시에 도착 후 깨워서야 비로소 눈을 떴다. 아주 잘 잔 얼굴로.
숙모가 소개해주신 오리엔트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 자얀트씨가 대문에 나와계셨다.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간. 한참 잠잘 새벽이었는데.... 마중까지 나와주시고 고마웠다.
하아... 도착이다!
길고 긴 16시간의 대장정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대충 한번 씻고 널찍한 침대 담요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아무 생각이 없다. 일단 자고 싶다.
무탈하게 잘 와준 깍두기에게 고마웠고 기특했다. 그리고 그녀를 내내 잘 보살핀 나는....일단 자야했다.
여기 우리, 리시케시에 왔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