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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마르 Jan 08. 2024

하루에 20km 이상 걸으며 살을 찌우다

힘들 때 오히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솟는다

그 당시 나는 피폐해져 있었다.  계속 누워 있으며 음식도 거의 안 먹어서 살이 빠져갔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도 마치 초콜릿이 녹듯이 서서히 뭉그러지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리가 불규칙 해져서 병원에 다녔다. 음식을 먹고 나서도 속이 불편해 다 게워냈다. 이 상태로 순례길 갔다가 쓰러져 저 세상 가는 거 아냐?라는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속으로 삼켰다.


몸과 마음이 비실해진 상태에서 길을 걷기 시작한 건데 첫날 죽을 뻔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났는데 힘든 와중에도 머리는 비어있는 이 상태가 맘에 들었다.


그렇게 겨우 스페인으로 넘어가 짐을 풀고 씻고 식사를 하는데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나니 중간중간 간식으로 에너지 보충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날 오후에 슈퍼에서 초콜릿이나 과일, 치즈, 빵등을 사서 배낭에 쟁여두었다. 아침에는 꼭 바 Bar 에 들려 아침식사로 커피와 크로와상이나 토스트세트를 먹었다. 잼과 버터를 야무지게 빵 구석구석 발라 카페라테 Cafe con Leche와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길 걷다 중간에 쉴 때 bar에서 생맥주 한잔을 가볍게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숙소에 도착하고서는 식당에 가거나 운이 좋으면 그때그때 동행자 중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의 맛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모두가 일찍 자는 분위기로 나도 금세 잠에 빠져버렸다. 처음 며칠은 꿈에 시달렸지만, 점점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자연 속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여정의 2/3 정도가 지나고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들 살이 빠졌다고. 바지의 허리춤이 헐렁해 벨트로 고정하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여유 있던 옷의 핏이 점점 타이트해졌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고 잘 마시니 몸이 다시 생명력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의 건강을 위한 요소는 간단했다.


좋은 공기에

많이 걷고 (움직이고)

제 끼니때 잘 먹고

제때 (오후 9시)쯤 수면에 들면 된다는 것을.



순례자의 삶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 채 일단 갔다가 건강을 되찾아 왔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땐 때깔이 꽤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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