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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마르 Jan 06. 2024

걷다가 별이 된 순례자들

순례자의 비석들

만약 순례자 길을 걷다가 쓰러져 두 번 다시 못 일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산티아고로 가기 위한 길로 일반적으로 프랑스길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사실 정석인 길이다. 그래서 일단 국내에 까미노 책이 나왔다 하면 프랑스길에 관련된 것이라 까미노를 처음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프랑스길만 있는 줄 알고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국내에 발간된 책을 달랑 들고 가서 거기 나오는 대로 했다.

책에선 까미노를 시작하려면 프랑스의 생장 피에르포르트 Saint Jean Pied de Port로 가야 한다고 나와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파리에서 TGV 타고 간 생장

먼저 순례자 여권과 조개를 받고 그날은 거기서 쉰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난 몰랐다. 첫날에 바로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줄. 또 난 몰랐다. 국경을 넘기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하고 그 길이 까미노 길중에 가장 힘든 코스임을.


처음엔 괜찮았다. 의기충만하게 앞으로 열심히 나아갔는데 점점 경사가 심해졌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데 끝이 안 보였다. 나는 피레네인지도 모르고 그냥 작은 산인가 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구나가 이런 뜻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쓰러질 것 같은 기분에서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런데 가파르게 경사진 내리막길이라 장난이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 눈앞이 하얘졌는데 그 와중에 산에 유독 비석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걸어본 까미노 길들을 돌이켜보아도 첫날인 이 구간에 비석이 제일 많았다. 그 비석들은 순례자들의 비석이었다. 걷다가 쓰러져 죽은 순례자들 자리 근처에 비석을 세운다고 했다. 이런.

나도 저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거친 코스였다.


순례자의 길은 9세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허허벌판에 장비도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지팡이 하나 들고 걸었을 것이다. 배고프고 목마른 상황에서 이 높고 가파른 피레네 산맥에서 결국 지쳐 쓰러진 별이 된 순례자가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누구인지도 몰라 비석조차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순례길에서 나이불문하고 별이 된 순례자들이 있다. 그래서 피레네 산맥 외에도 길을 걷다 보면 그들을 기리는 비석이나 상징물들을 볼 수 있다. 발견하면 지나가면서 그들을 기리며 지나가보는건 어떨까.

까미노는 위험한 길인가. 오히려 범죄와 유해물에서 벗어난 안전한 길이라 여겨진다. 거기다 이제는 프랑스길 같은 사람들도 많고 알베르게도 늘어났고, 핸드폰을 유심칩만 바꿔가면 연락도 가능하니 더 안전해졌다.

다만, 자기 페이스에는 맞춰 걷는 게 좋다.


살아서 산티아고에서 증서도 받고 해냈다는 기쁨도  만끽하자!

* 재미로 적은 것이기에, 괜한 걱정은 금물이다

* 잘 걸을 거고 즐길 거다.



순례길 시작 팁 (중요!)


- 꼭 피레네 산맥을 넘지 않아도 된다!!

스페인 사람들은 생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론쎄스 바예스 Roncesvalles에서 시작하는 편이다. 론쎄스 바예스는 생장에서 국경을 넘어 도착하는 스페인 지역이다. 꼭 생장에서 시작한다고 까미노를 완성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빰쁠로나 Pamplona, 레온 León 등 자기 사정에 맞게 중간에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순례자 여권도 정말 작은 마을이 아닌 이상 받거나 구매 가능하다. 그리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주는 증서는 100km 전 지점인 사리아 Sarría 에서부터 받는 것이 가능하니 걱정 마시라~ 그래서 단체 여행객들은 사리아에서부터 시작하고 증서를 받기도 한다.(사리아가 제일 재미없는 부분이라 추천하진 않는다)


-프랑스에서 시작하려면 파리로 가서 기차로 Saint Jean Pied de Port로 가서 순례자 여권 받고 하룻밤 머문 뒤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라.


-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를 넘어가게 된다면 등산 스틱을 가져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때 등산스틱은 올라갈 때를 위해서가 아닌, 내려갈 때를 대비해서다. 내려갈 때 경사지고 배낭짐이 무거워 지지할 수 있는 지팡이 같은 것이 없으면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갈 수 있다. 나는 이때 등산스틱을 가져갔음에도 마지막엔 그냥 안 쓰고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했다. 첫날부터 등산스틱이 필요하니 사용법 정도는 간단히 숙지하고 가는 게 낫겠다 (숙지 안 하고 그냥 가져가서 첫날 처음 사용해 본 자가 하는 조언입니다) 참고로 외국애들은 자연에서 두껍고 긴 나무막대기를 찾아 지팡이로 사용하였으니 없으면 없는대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첫 번째 코스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갈 때 중반 이상이 되면 스낵을 파는 트럭을 외에도 가게를 못 보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깃거리 (에너지바, 작은 초콜릿이나 과일 등)을 챙겨가는 게 좋다.

스낵 트럭 / 어느 나라 사람이 지나갔는지 체크한 표_한구Coree 도 있다


- 나는 프랑스길을 다시 걷게 되면 론세스 바예스부터 시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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