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의 까미노
나의 마지막 까미노에선 11월에 2주간 걸었는데 그동안 순례자를 단 4명만 만났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11월 추운 시기인 비수기
2. 프랑스길이 아닌 남부 은의 길인 via de la plata
인 관계로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2주 동안 알베르게(순례자들의 숙소)에서 혼자 자기 일쑤였다. 혼자가 아니어도 무섭지만, 혼자여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는 bar에 가서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고 키를 받거나 관리자가 와서 문을 열어주고 갔다.
그러면 정말 나 혼자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에 덜렁 혼자 남게 되었다. 누가 갑자기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기에 해가 지고 나면 알베르게의 문을 잘 걸어 잠그고 불을 끄고 빈 침대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나마 나를 안심시켜 준 건 눈썹칼이었는 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베개 밑에다 두고 잤었다. 그걸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든든했다. 그리고 다행히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과거에 글을 걸을 당시에 블로그에 적은 글을 찾아보았다. 이렇게 젹혀있었다.
앞으로 목적지까지 2일 남았다. 현재까지 200km 이상 걸어왔다
어제는 살라망카에서 시작해 37-38km를 걸었는데 길이 너무 어려웠고 다리는 나갈 거 같고 해가 질 때까지 걸어서 조금 위험했다. 하지만 위험해지면 생기는 초인의 힘으로 걸어서 숙소 알베르게에 도착해 바느질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창문을 두들길 때 그 안도감.
바르셀로나 우리 집에도 없는 욕조가 있어 따뜻한 물에 푹 몸을 담그고 홈메이드 식사를 배가 터지게 먹어서 손 따고 잤다.
허허. 이렇게 배 터지게 먹은 것은 오랜만이다. 음식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다.
길 위엔 나밖에 없다.
완전히 혼자다. 여태까지 4명의 순레자밖에 못 만나왔다.
그중 혼자 다니는 사람은 나.
여자사람도 나.
동양인도 (거의) 나 ( 미국인 부부 한국인 와이프)
사실 이 시기에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을 추천하진 않는다. 심지어 스페인 사람들조차 혼자 다니냐고. 안 무섭냐고 길을 묻는 나에게 되묻는다.
[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하는 일을 주저리 적어본다 ]
내가 잘 침대를 고른다.
침낭을 그곳에 피고
몸을 씻어 피로를 풀고 갈아입을 옷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서둘러 빨래를 한다.
옷을 침대나 가구 위에다가 걸어서 말린다.
마을 구경을 하며 슈퍼나 식당, bar 가 있는지 살펴보고 주변을 산책하다가 저녁이 되면 식당에 가서 먹거나 슈퍼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다. 보통 알베르게에 다른 사람이 두고 가거나 관리자가 둔 소스들이 있는 곳이 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오늘의 일정을 가벼운 노트에 기록하고
다음날 일정을 살피고 떠날 짐을 꾸린다.
뜨거운 물을 끓여 보온물 핫팩을 준비하고 두꺼운 양말도 신는다.
불을 끄고 침낭에 들어가 핫팩을 끌어안고 잔다.
아침이 되면 간단한 스트레칭 후에 갈 준비를 하고 알베르게 열쇠를 제자리에 두거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고독하고 고요한 공간 속에 오롯이 나만 있는 느낌은 익숙하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건 싫지만 그렇다고 긴 시간 동안 혼자 있는 것도 심심하다니.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에 잠들기 전에 밤하늘을 보러 잠시 나오곤 했다. 어둡게 잠든 마을에 밝게 빛나던 달과 하얗던 입김은 기억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겁이 더 많아져서 그런지 몰라도 아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게 다녔지? 란 생각도 가끔 하면서도 또 한 번 해보고 싶다.
길 위에서 적었던 글에 이런 글이 있어 마무리로 함께 남긴다.
길 위에는 깨달음이 있다.
- 욕심부리지 말 것
- 충실할 것
- 즐거울 것
- 반갑게 인사할 것
- 감사할 것
다음이야기에선 까미노에서 만난 압도적인 순간들 사진들을 올릴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