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 없는 나를 마주하다
2019년에 떠나온 한국, 헬싱키에 정착한 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어디선가 새로운 나라에 어느 정도 완벽하게 동화되려면 약 7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그것보다는 2년 모자라지만 반은 넘게 왔으니 한 번쯤 20대 후반에 시작된 나의 타지살이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년 동안 내 삶의 속도는 느렸다가 빨랐다가, 마치 고장 난 비디오테이프 같았다. 어느 순간에는 아, 삶이 이렇게 느린 속도로도 갈 수 있는 건가 할 만큼 늘어져있었다. 매일매일 생산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오히려 얼어붙은 시간이었다.
어떤 순간에는 나름 또 에너지를 받아서 앞으로 치고 나아가기도 했다.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이런 기분이 들 수 있구나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나 자신에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자주 들었던 생각은 아, 내가 지금 뒤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삶이 단조로워지다 보니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의 뭉탱이 속에서, 나는 한국에서의 시간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감으로 나에 대해서 알아갔다. 그 부분이 타지살이를 5년 하고 난 후,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일 것이다.
포장지 없는 나를 마주하다
여기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내가 어떤 학교를 나오고, 어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인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일련의 타이틀과 같은 것들이 여기서도 어느 정도의 introuduction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화가 조그만 시작 돼도 그런 것들은 그냥 아,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여겨지며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어떤 것인지와 같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전에 해외경험이 많이 없었던 나는 그게 참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공통되는 문화적 레퍼런스가 있고, 어느 정도의 공감 능력만 있으면 표면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는 건 참 쉬웠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화가 다른 것도 있겠지만 나에 대한 이해가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나중에 상담을 통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히스토리와도 연결이 되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쉽게 정의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는 건
꽤나 신기하고 즐거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아마 한국처럼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대학을 나오고, 어떤 직업을 가진 것처럼 외부적인 조건들이 아주 쉽게 자신을 정의해 주는 사회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좀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전까지 나는 나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좀 안일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장이 나를 설명해 주겠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를 설명해 주겠지 라는 태도가 컸다. 그러다가 핀란드에 와서 한방 크게 맞은 것이다. 마치 계급장 떼고 붙어야 하는데, 별것도 아닌 계급장이었지만 그것 몇 개 없어졌다고 나는 심각하게 흔들렸다. 어찌 생각해 보면 그래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그렇게 흔들린 게 다행인가 싶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나라는 것은 늘 바뀌기도 하고, 추상적이며 너무 큰 개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걸 안다고 정의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맘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나를 그냥 포장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놓는 데에는 좀 더 익숙해졌다. 이게 난데, 뭐 어때. 아님 말고. 싫음 말고. 하는 생각이 최근들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개인적 콤플렉스와 합쳐져 늘 사람을 만날 때 아주 두꺼운 가면을 써왔다. 미움받으면 안 되고 항상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되지도 않는 포장지를 어찌 저지 둘러가며 진짜 나를 숨기려고 했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 살면서 그런 포장지가 갈기갈기 찢겨지면서 나는 나를 가장 있는 그대로, 어쩌면 못난 모습 그대로 싫지만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마주함들이 어떤 과정을 지나 나에게 어떤 편안함을 주었다.
아직도 어느 한구석의 나는 나를 좀 더 멋있게 보여줄 포장지를 찾아 열심히 바깥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포장지를 찾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차렸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개인적이고 두서없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앞으로 생각이 날 때마다 해외살이가 나의 내면에 가져다준 변화를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