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연, 정선아 배우로 부산에서 만났던 <위키드>
첫째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내가) 적응하느라, 둘째아이 유치원 옮기랴 정신 없는 3월을 보냈다. 초등학교 준비물과 유치원 준비물을 각각 챙기고, 다른 방식으로 오는 '알림'들을 확인했다. 매일 아침 건강상태 자가진단을 하고, e알리미를 확인하고, 방과 후 스케쥴을 정리했다.
아이들도 나도 적응하기 시작했던 4월 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첫째는 어엿한 여덟살 취학아동! 공연을 함께 볼 수 있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8세 이상 관람가 공연으로 때마침 <위키드>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미 서울 공연은 좋은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1층 맨 뒷줄이라도 구매해야하나 고민했는데, 부산 공연 좋은 자리를 예매하는 편이 낫다는 지인의 말에 덜컥, 부산 공연을 예매했다.
아이는 공연일을 하는 아빠엄마 덕에 이런저런 공연을 많이 접한 편이다. 동화를 각색한 공연들 <기분을 말해봐!> <알사탕>부터 국악공연, 낭독공연, 현대무용 등을 접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바다탐험대 옥토넛>이었겠지. 한동안 놀면서 '휴대전화는 반드시 꺼주시고...'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코로나로 한동안 공연을 못봤다.
숙소는 공연장과 가장 가까운 호텔로 정했고, 공연 당일에는 유튜브로 예습도 했다. [뮤지컬 '위키드' 안 보면 후회할 관람 가이드 | 노래 무대 포인트 캐릭터 정리 자리 추천]이라는 18분짜리 영상이 큰 도움이 됐다. https://youtu.be/LtoRCiHgwpo
뮤지컬 <위키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할 '오즈의 마법사' 내용을 기반으로 캐릭터, 소재,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해줬다. 2003년 초연된 이 작품이 2013년 우리나라에서 초연했고, 세번째 공연이라는 것도 알게됐다.
미리 듣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1부터 12가 아닌 13까지 있는 오즈의 시계와, 시계를 활용한 무대도 볼 수 있었다. 이 영상에서 무대 위에 있는 용을 언급하며 수동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덕인지 아이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용이라고 했다.
사실 <위키드>가 뮤지컬 입문용으로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2019년 겨울, 런던에서 <Wicked>를 봤는데... 화려하고 근사했지만 너무 좋지는 않았다. 무대 규모도 훨씬 컸는데 언어적 장벽 때문에 이해를 못했던 탓이려나. (멀고먼 영어의 길) 나의 일정에 맞춰 작품을 골라 볼 수 있는 런던 웨스트엔드나 뉴욕 브로드웨이가 아닌 이상, 지금 공연중인 뮤지컬이 곧 입문작이 될 수밖에. 이 또한 너와 작품의 '인연'일 터이리라.
대망의 <위키드> 관람. 로비에서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했는데, 극적으로 내가 빌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는 '망원경'에 큰 흥미를 보였다. 망원경에는 목에 걸 수 있는 줄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공연 내내 자기 목에 걸고 있을 정도였다.
내가 망원경으로 볼 수 없었음을 핑계삼아 말하자면, 나는 1막 내내 글린다 역이 정선아가 아닌줄 알았다. 목소리도 어린데다 저렇게 젊을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유튜브에서 공연 영상을 찾아보면서 발견한 댓글에 기막힌 표현이 있다. 누군가 (정선아 배우가 '글린다'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글린다가 정선아를 연기한다"고 썼다.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정도로 정선아 배우는 그 자체로 글린다였다. 엘파바 역의 손승연 역시 최고였다.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지!
아이와 첫 '대형뮤지컬' 관람이라 많은 것들이 신경쓰였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통로 좌석을 골랐다. 우리 바로 뒷자리에 앉은 관객들 걱정을 많이 했다. 티켓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다, 우리만큼 그들도 기대하고 공연장에 왔을텐데 혹여나 아이가 공연에 방해가 된다면 안되니까. 그간 공연은 많이 봤지만 아이란 예측할 수 없는지라 상당히 긴장하며 공연을 봤다. 내 두번째 손가락은 공연 내내 입가에 있었다. "쉿, 말하지 않는거야, 움직이지 않는 거야." 그러면서 공연을 봤는데도, 충분히 좋았다. 아이는 1막은 집중해서 보더니 2막에서 약간 움직였다. 특히 피에로와 엘파바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지루해했다. 세시간은 조금 무리였구나 싶었지만 끝까지 큰 사고 없이 잘 봤고 같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공연을 본 후 넘버 몰아듣기, 캐스팅별로 노래 들어보기 등 <위키드>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다가 [뮤지컬 탐독]이라는 책에서 <위키드> 이야기를 깊이 읽을 수 있었는데 특히나 포스터에 담긴 작품의 메시지를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두 주인공의 상반된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발성마저 대비된다는 음악적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뮤지컬 <위키드>는 너무 다른 서로를 경계하는 넘버 '이 느낌은 뭐지?'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친구가 되는 '파퓰러'를 거쳐,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 성숙해지는 '영원히'로 이어지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성장 스토리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우정을 통해 편견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된다.
- 뮤지컬 탐독(박병성, 2019, 마인드빌딩)
나는 공연 후반부에 겨우 한 번 망원경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때가 마침 'For Good'을 부르는 장면이었나보다. 클로즈업해서 본, 노래 부르는 글린다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엘파바 역시 울고 있었다. 나도 그런 그들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공연 내용에 대해 예습도 한데다 한국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니 나는 런던 공연보다 훨씬 감동이 컸다. 무대와 의상, 조명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순식간에 진행되는 매끄러운 전환을 보는 희열이 있었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나서도 이 곡을 가장 많이 찾아보게 됐는데, 이 영상이 딱 내가 봤던 캐스팅이기도 하고, 노래에만 집중하기 좋아서 계속 듣고 있다. https://youtu.be/6qsHRhDqCGY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거란 사람들은 운명을 찾아내어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겨서 힘을 준대. 성장할 수 있도록
어제와 다른 나의 인생은 여기까지 오게 된거야 널 만났기에
I've heard it said, that people come into our lives
for a reason bringing something we must learn
and we are led to those who help us most to grow
if we let them and we help them in return
Well, I don't know if I believe that's true
But I know I'm who I am today
because I knew you
나는 '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뮤지컬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김'을 믿는다. 누군가로 인하여 달라진다는 부분에 공감한다. 너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너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