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런던 콜로세움에서의 Spirited Away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026년 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한국 공연 소식에 맞춰 다시 꺼내보는 2024년 4월 30일에 런던에서 본 공연 감상.
스튜디오 지브리의 2001년 영화를 바탕으로 2022년 일본에서 초연했고, 2024년 4월 30일, 런던에서 유럽 초연을 시작했다. 2,300석 규모의 런던 콜로세움은 개막을 기다렸던 관객들로 가득 찼다. 극장 앞에 늘어선 줄에는 센과 치히로 속 캐릭터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고, 숯검댕이 귀걸이를 한 팬들을 비롯해 일본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극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숲에 들어온 듯 천장까지 나뭇가지와 초록 잎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 공연은 (토토로가 영어로 공연한 것과는 달리) 일본인 배우들이 일본어로 공연하는데 영어 자막이 중앙 상단과 양쪽 나뭇가지 사이에서 보인다. 오케스트라는 무대 앞 하단에 있는데 지휘자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게 위치한다.
애니메이션 장면이 이렇게 구현될 수가 있구나.
무대에서 안 되는 게 없구나...!
2층에 앉았는데 무대에 빨려 들어가듯 공연 내내 의자 끝에 걸터앉아 봤다. 애니메이션은 비현실이라면 공연은 현실이라서, 너무 좋았다. 모든 캐릭터들이 내 바로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무대는 구조를 잘 만들어 치히로가 먼 길을 떠나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개성을 살린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변신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치히로가 유바바의 방에 끌려 들어가는 장면이나, 이름을 빼앗기는 장면 등 애니메이션의 표현이 무대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됐다. 마법같이 순식간에 변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무대 위에서 하쿠는 가장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움직임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걸음걸이와 찰랑이는 단발머리. 내 뒤에 앉았던 남자 관객은 그의 등장에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엔 깊은 슬픔과 따뜻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하쿠는 유바바의 명령을 따르는 세계의 하인처럼 보이지만, 그 눈빛은 언제나 치히로를 향해 있었다. 위험한 순간마다 나타나 그녀를 도와주는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쿠는 이름을 잃고도,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만은 잊지 않은 존재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그가, 치히로의 도움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고,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
토토로에서도 그랬지만, 센과 치히로에서도 음악이 정말 좋았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하는데 오페라 전용 극장인 장점도 있어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하쿠가 힘들어하는 치히로에게 이름을 잊지 말라며 위로하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2막이 시작하고 얼마 후 개구리가 등장하다가 그만 뒷다리가 뚝 떨어져 버렸다. 순간 인형 조종사도 관객들도 얼음이 되었는데, 개구리가 떨어진 자신의 다리를 지켜보며 입을 떡 벌리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바람에 모든 관객이 크게 웃었다. 조종사는 무대 아래쪽으로 떨어진 다리를 어렵게 주워서 다음 장면을 이어 나갔다. 관객들은 퍼펫티어의 순발력 넘치는 대응에 박수를 보냈다. 영화나 영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장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출입구 옆 기념품 상점에는 다른 층에도 기념품을 판매한다는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줄이 늘어서 있었다. 쉬는 시간 음료와 스낵을 파는 바에서는 특별히 마련된 초밥 도시락과 오니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일본풍으로 장식된 벤토 바를 별도로 마련해 두기도 했다. 인터미션 때 사람들이 독특한 억양으로 '오니기뤼'를 주문하던 모습은 너무나 신기했다. 산업으로서의 공연이 한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몹시도 배 아프게 느낀 기회였다.
Sprited Away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환상 속 세계가 어떻게 현실의 무대 위로 옮겨질 수 있는지를 몸으로 체감한 시간이었다. 캐릭터와 장면 하나하나에 일본 공연팀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졌고, 익숙한 이야기일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제 이 공연이 서울에서도 무대에 오른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센과 치히로의 세계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드문 기회임은 분명하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그리고 무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번 공연을 꼭 놓치지 않기를 추천한다.
런던 공연 20초 홍보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