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글로브 Shakespeare Globe
딸랑딸랑—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신호는 화려한 전광판이나 기계음이 아니라 직원이 작은 종을 들고 극장을 주변을 돌며 울리는 소리에서 온다. 동그랗게 열린 하늘 위로는 흰 구름이 흘러가고, 예기치 않게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마당에 빼곡히 서서 무대를 올려다보는 사람들, 그들을 둘러싸듯 세워진 초가지붕 목조 건물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열기와 연극을 향한 사랑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템즈 강변에 자리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은, 신식 건물들 사이에서 고전적 무대 형식을 지켜내면서도 낡지 않은 운영 방식을 보여주는, 오늘날 런던의 상징적 공간이다.
최초의 글로브는 1599년 템스강 남쪽 사우스워크 지역에 세워졌으며, 셰익스피어가 속한 로드 챔벌린스 맨 극단의 본거지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줄리어스 시저, 햄릿, 맥베스, 리어왕과 같은 걸작들이 선보이면서 글로브는 당시 런던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613년 헨리 8세 공연 중 무대 효과로 사용된 대포에서 불꽃이 튀어 초가지붕에 불이 붙으면서 극장은 전소되었고, 다음 해 재건되었으나 1642년 청교도 혁명기에 내려진 극장 폐쇄령으로 문을 닫게 된다. 이후 건물은 완전히 철거되었고, 오랫동안 그 흔적조차 잊혔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은 20세기말 미국 배우 샘 워너메이커의 열정적인 복원 운동을 통해 1997년 원래 자리와 가까운 곳에 재건된 것이다. 지금의 글로브는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의 조건을 충실히 되살린 체험적 공간으로, 건물은 원형에 가까운 20 각형 구조를 띠고 있다. 중앙의 ‘야드(pit)’에서는 약 700명의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듯 서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데, 이들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그라운들링스(groundlings)’라 불린다. 무대와 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와 마주하는 경험은 글로브만의 특징이다. 나무 갤러리 좌석은 세 단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객석의 높이에 따라 사회적 위계와 서로 다른 시야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글로브는 ‘지붕 없는(open-air)’ 야외극장이어서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무대 위를 덮은 지붕은 ‘천국(Heavens)’이라 불리며, 열두 별자리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 셰익스피어 시대의 우주적 상상력을 상징한다.
건축 또한 전통적 방식을 고수했다. 참나무 기둥과 석회 플라스터 벽, 물갈대 지붕으로 지어진 건물은 런던에서 유일한 초가지붕 건축물이다. 이는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법으로 금지된 양식을 되살리기 위해 특별 허가를 받아 가능했던 일이었다. 따라서 글로브 극장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당시의 건축적 물질성과 사회적 공기, 나아가 런던의 역사적 맥락까지 아우르는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붕은 노퍽 지역 갈대로 엮은 초가지붕으로 복원되었는데, 이는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금지되었던 방식이 근세기에 처음 다시 승인된 것이며, 건물 전체가 잉글랜드산 오크목을 못을 쓰지 않고 전통 기법으로 조립되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대 위에는 천체와 신화를 묘사한 ‘천국(Heavens)’이라는 장식 천장이 있고, 무대 아래에는 ‘지옥(Hell)’이라 불린 함정 장치가 있어 배우들이 극적 효과를 위해 출몰하는 등 공간 자체가 무대예술의 상징적 구조로 작동한다. 수용 인원은 약 1,500명으로, 원래 극장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으나 이는 현대의 안전 규정을 반영한 것이며, 좌석과 마당에 모인 관객이 배우와 함께 호흡하며 공연을 만들어가는 특유의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렇듯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오늘날의 글로브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적극적인 운영 철학을 갖추고 있다. 극장은 셰익스피어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대담한 공연을 선보이는 동시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 활동을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살아 있는 학습 공간’을 지향한다. 셰익스피어 전담 도서관과 연구 인력을 갖추고 국제적 연구 허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공연 역시 엘리자베스 시대의 조건을 복원한 야외극뿐 아니라, 전 세계 투어와 협업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확장된 맥락에서 경험하게 한다. 나아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운영, 지역사회와의 연계, 투명한 조직 운영을 미래 비전으로 삼으며, 예술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글로브 극장의 부활을 이끈 인물은 시카고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 샘 워너메이커였다. 1935년, 15살이던 그는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서 본 영국관의 작은 글로브 극장 모형에 매료되었다. 그때 심어진 씨앗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고, 1970년 그는 실제로 런던에 글로브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늘 궁금했다. 왜 미국 배우가 영국 땅에 셰익스피어 극장을 복원하기 위해 애썼을까?
그가 영국에 남게 된 데에는 아이러니한 역사가 있었다.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 선풍과 블랙리스트는 그를 '정치적 난민'으로 만들었다. 귀국할 수 없었던 그는 런던에 머물렀고, 영화와 연극, TV를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무대를 복원하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다. 만약 그가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글로브 극장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공사가 그렇겠지만, 프로젝트는 순탄치 않았다. 부지 확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의 갈등으로 법정 싸움이 길어졌고, 경기 침체와 후원 중단으로 수차례 무산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워너메이커는 늘 미래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지금 가스비조차 낼 수 없지만,
언젠가 템스를 건너는 다리가 필요할 것이다.
라며 모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결국 그는 1993년, 글로브의 개막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집념은 극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고, 4년 뒤 사람들 앞에서 그 결실이 드러났다.
오늘날 글로브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흔히 셰익스피어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무대에는 샘 워너메이커라는 미국 배우의 망명과 집념, 그리고 국경을 넘어선 연극에 대한 사랑이 함께 서려 있다. 그래서 글로브 극장 옆에는 샘 워너메이커 플레이하우스를 만들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샘 워너메이커 극장은 글로브 극장 옆에 자리한 촛불 공연장으로,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들이 사용했던 실내 극장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공간이다. 100여 개의 밀랍초 불빛 아래, 관객은 마치 17세기 런던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친밀한 분위기를 경험한다. 이 극장은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인 템페스트 같은 연극이 공연되던 무대를 연상시키도록 설계됐다. 건물의 골격은 오크 목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장 장식은 17세기 스코틀랜드 저택의 벽화를 본뜬 것이다. 또, 당시에도 있었던 무대 위 천장에서 배우나 소품을 위아래로 올리고 내릴 수 있게 하는 도르래 장치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공중 연출까지 가능하다.
샘 워너메이커 극장에는 특별한 직업이 있다. 수백 개의 밀랍초를 관리하는 ‘캔들리션(Candleician)’, 일종의 촛불 마스터다. 매 공연마다 촛불을 손질하고 불을 밝히며 무대의 공기를 완성하는 이 존재는, 단순한 조명 기술자를 넘어 극장의 낭만과 전통을 이어가는 ‘빛의 연출가’라 할 수 있다. 샘 워너메이커 극장은 촛불 아래서 셰익스피어 후기작과 동시대 잔혹비극 같은 밀도 높은 고전을 주로 올리는 글로브의 또 다른 얼굴이다.
복원 극장이 문을 연 1997년 이래 셰익스피어 글로브는 단순한 고증의 공간을 넘어, 시대마다 다른 예술감독들의 리더십 아래 새로운 색깔을 입어왔다. 20세기말 복원 과정에서 체계적인 예술감독 제도가 도입되면서 극장의 방향은 개별 인물들의 철학과 해석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초대 예술감독은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마크 라일런스(Mark Rylance, 1995~2005)였다. 그는 원형극의 정신을 최대한 고증해 되살리는 데 주력하며, 고대 의상과 비자연주의적 연출, 배우와 관객의 직접적 소통을 강조했다. 이른바 ‘울트라 라이브(ultra-live)’라 불린, 셰익스피어 시대의 생생한 연극적 조건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라일런스 시기의 레퍼토리는 셰익스피어 원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1558~1603) 작품과 자코비언 시대(Jacobean, 1603~1625) 작품들을 무대화하며 언어의 운율과 소리를 탐구하는 고전적 실험이 이어졌다.
뒤를 이은 도미닉 드롬굴(Dominic Dromgoole, 2005~2016)은 보다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방향으로 극장을 이끌었다. 그는 사회적 다양성과 대중적 접근성을 확장하고, 새로운 연출가와 배우를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무엇보다 세계 순회공연과 Brave New World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브를 런던의 상징적 공간에서 글로벌 연극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확장시킨 점이 특징적이다. 그의 임기에는 셰익스피어뿐 아니라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적극적으로 무대에 올랐고, 신작 개발과 해외 극단과의 협업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엠마 라이스(Emma Rice, 2016~2018)는 2년이라는 짧은 임기 동안 글로브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녀는 현대적 조명과 음향, 파격적 각색을 도입하며 고전 무대의 경계를 과감히 확장했고 젠더나 사회적 소수자 서사를 강조한 연출은 신선한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셰익스피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여성과 사회적 다양성을 주제화한 공연들로 독자적인 흔적을 남겼다.
라이스는 현대적인 조명과 음향 장비를 사용하여 공연의 몰입도를 높이고자 했으나, 이는 극장의 전통을 중시하는 이사회와의 갈등을 야기했다. 무대 조명과 음향 기술 사용에 있어 전통적인 '공유된 빛(shared light, 자연광이나 최소한의 조명을 사용하는 것)'과 비증폭 음향 원칙을 고수하는 극장 방침과 충돌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 글로브가 전통을 중시하는 복원극장으로서의 정체성과 현대적인 실험정신을 지향하는 극장으로서의 방향성 사이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라이스의 사임은 글로브 극장의 미래 방향성을 분명히 한 사건이었다.
현재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미셸 테리(Michelle Terry, 2018~ )는 배우 출신답게 ‘앙상블 중심’의 창작 방식을 강조하며, 배우 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극장의 운영을 새롭게 정의해 왔다. 그녀의 시기에는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을 비롯해 인종과 성별을 초월한 포용적 무대가 자리 잡았다. 고전 텍스트의 충실한 해석과 함께, 동시대 신작을 병행하며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한 레퍼토리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2024년, 미셸 테리는 '리처드 3세'의 주연을 맡았다. 그러나 이 결정은 장애인 배우 커뮤니티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리처드 3세는 역사적으로 척추측만증을 앓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몇몇 주요 프로덕션에서는 장애인 배우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 이에 대해 100명 이상의 장애인 배우와 지지자들은 이 역할이 장애인 배우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캐스팅을 요구했다.
미셸 테리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장애인 배우들의 목소리를 인정하며도, 연극에서의 역할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상징적 표현이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녀는 자신의 연기가 장애인 커뮤니티를 대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구조를 탐구하려는 예술적 접근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결정을 고수해 공연을 진행했다. 초기 캐스팅 논란과 달리 공연은 크게 화제가 되지 못하고 끝났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의 예술감독 변천사는, 고전적 정확성과 원형 재현에서 출발해 현대적 해석, 사회적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확장되어 온 긴 여정이다. 각 시기의 리더십은 극장을 과거의 무대를 재현하는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동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과 경험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예술기관으로 만들었다.
400년 전의 무대를 현재에 되살려 생생한 체험을 선사하고, 셰익스피어라는 보편적 유산을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글로브는 전통과 혁신, 연구와 교육, 예술과 지속가능성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오늘날에도 런던을 찾는 이들에게 여전히 빼어난 연극적 성지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