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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듣는 몰입형 전시

바비칸 Feel the Sound

by 정재은

바비칸에 갈 일이 있어, 그동안 봐야지 하고 미뤄뒀던 전시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전시는 내일이면 끝나기에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2년 전, 석사과정 수업의 일환으로 바비칸 전시장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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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으레 전시장은 3층이려니 하고 올라갔더니, Feel the Sound 전시는 0층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전시는 바비칸의 여러 공간을 이동하며 이어졌다. 그라운드 층에서부터 주차장, 광장까지 다양한 장소를 오가며 작품을 만나니 마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흔히 전시는 한 공간에서 쭉 이어지는데, 이 전시는 장소를 이동하며 경험해야 했다.


전시 포스터(출처: 바비칸 웹사이트)

요즘 몰입형 공연이나 전시가 많아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작품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소리를 몸으로 느끼고 움직이며 참여하는 전시였다.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광고나 관련 영상을 접했지만, 아이들은 아무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들어갔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금방 보고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들에게 딱 맞는 전시였다. 만지고, 누르고, 춤추고, 따라 하도록 유도하는 체험이 많았다. 거대한 화면에 나타나는 CG 춤 동작을 따라 하며 웃고, 돌아가는 선풍기에 빛을 쬐어주니 뒤에 있는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등 재미난 반응이 따라왔다. 갤러리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언스 뮤지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과 소리, 그리고 기술이 어우러져 있어서 재미뿐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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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의 강렬한 체험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주차장에서 만난 설치 작품들이었다. 평범하고 어두운 주차장이 음악과 빛으로 가득 찬 공연장이 되어 있었다. 트렁크에 사운드 시스템을 단 복고풍 자동차들이 등장했는데, 이 차들이 뿜어내는 비트에 맞춰 사람들이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됐다. 그냥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소리에 둘러싸여 몸으로 흡수되는 듯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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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박수나 땀의 양 같은 데이터를 측정해서 그것을 음악과 영상으로 바꿔주는 장치도 있었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자기 몸과 연결되는 느낌이 새로웠다. 이런 복잡한 기술이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전시에서는 오히려 놀이처럼 가볍게 체험할 수 있도록 잘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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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청각이나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벤치에 내장된 진동, 저주파 베이스 플랫폼, 반응형 조명 덕분에 누구든지 소리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각이 약한 관람객에게도 열려 있는 전시라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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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 the Sound를 통해 요즘 몰입형 전시가 왜 인기를 끄는지 알 수 있었다. 작품을 “본다”는 차원을 넘어서 작품 속에 들어가고, 직접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내고, 내가 만든 소리를 듣고, 공간을 옮겨 다니며 이야기 속을 여행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Feel the Sound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소리 속에서 살아보는, 울림이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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