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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허무는, 여름의 건축 전시장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플레이 파빌리온

by 정재은

런던 하이드 파크 근처, 넓은 호수 옆에 서펜타인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1970년에 문을 연 이곳은 회화, 설치, 조각 등 다양한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곳으로, 매년 여름이면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의뢰해 대형 야외 전시인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들어선다. 파빌리온은 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고 접근하기 쉬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실험적 건축과 예술이 만나는 무대가 가까이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 Peter Cook (Peter Cook Studio Crablab). Courtesy Serpentine, picture by Andy Stagg


서펜타인에서 2025년 6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열렸던 ‘플레이 파빌리온’은 레고 그룹과 서펜타인이 함께 기획하고 건축가 피터 쿡 경이 설계한 여름 프로젝트였다. 무료로 운영된 이 행사에서는 대규모 레고 설치 작업, 브릭 빌드 챌린지, 토크, 토너먼트, 한정 기념품 증정, 초청 게스트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다. 세계 놀이의 날(World Play Day) 개막 행사부터 자연 속 산책과 레고 세션(Flock Together), 아티스트와 함께한 창작 워크숍, 라이브 음악 쇼케이스, 나이키와 함께한 축구 테마 워크숍까지, 건축·놀이·음악·스포츠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Peter-Cook-2-1502x1001.jpg 파빌리온에 설치한 미끄럼틀에서 포즈를 취한 건축가 피터 쿡 경 copyright Gary Summers


올해 파빌리온을 설계한 피터 쿡 경은 영국 건축계의 거장이다. 1960년대 혁신적 건축 그룹 아키그램을 창립한 그는, 반세기 넘게 건축과 상상력의 경계를 넓혀왔다. 이번 작품은 레고 그룹과 함께 만든 ‘플레이 파빌리온’으로, 레고 브릭을 건축 구조 속에 녹여낸 야외 공공 예술 프로젝트였다. 피터 쿡은 “놀이란 생존이나 성취를 넘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기꺼이 엉뚱함에 빠지게 한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 공간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즐거움과 상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SERP-PLPV-080-1335x1001.jpg 파빌리온 내부 © Peter Cook (Peter Cook Studio Crablab). Courtesy Serpentine, picture by Andy Stagg


아이들은 파빌리온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수만 개의 레고 조각이 그대로 놓여 있었는데, 분실 위험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마음껏 꺼내 쓰고 만들 수 있도록 자율성이 보장돼 있었다. ‘함께 만들고 즐기자’는 신뢰가 가득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가져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함도 잠시, 이 파빌리온을 축소한 레고를 선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슬쩍 레고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가도 빼놓고 갈만한, 매력적인 선물이었다. 나만을 위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레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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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파빌리온을 축소한 모습의 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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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꺼내쓸 수 있는 레고 블록들. 둘째가 만든 스마일 맨 :)


아이와 어른이 뒤섞여 블록을 쌓고 허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전시였다. 매년 파빌리온을 통해 새로운 건축 언어를 실험해 온 서펜타인 갤러리는 올해 그 주제를 ‘놀이’로 확장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공공 공간이 어떻게 창의적 에너지와 자율성을 품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오래 기억에 남았다.


EAM_6016_nvUdAjYE-667x1001.jpg 파빌리온 외부 © Peter Cook (Peter Cook Studio Crablab). Courtesy Serp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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