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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Sep 27. 2022

나의 쓸데없는 이용학원 수강기

실무반 4주 완성

외국에 나가면 미용실 가는 비용이 비싸다는 핑계로 그동안 배워보고 싶었던 이발에 도전했다. 남편은 쓸데없는 일이라며 말렸지만 난 이미 도구를 갖추고 수강료도 지불한 상태였다. 못하게 하는 일을 할 때 왜 더 즐거울까? 해야 할 공부를 미뤄두고 쓸데없는 짓 하러 가는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지고 신났다.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앞머리를 잘라봤기에 머리 자르는데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정용 이발기를 사서 머리를 잘라준 적도 있었다. 온라인 튜토리얼 영상을 몇 번 보고 시도했다가, 점점 짧게 점점 짧게. 결국 삭발을 해줬지만.


검색 끝에 집 근처에서 발견한 이용학원에 개설된 실무반은, 자격증반에서 바버 샾이나 미용실로 넘어가는 이들을 위한 그야말로 실무를 배우는 반이었다. 나는 자격증도 기초도 없었지만 다행히 8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바버샵에 다니시는 것 같은 매끈한 헤어스타일의 자격 있는 분들 사이에서, 근본도 겁도 없는 아줌마는 내키는 대로 머리를 숭덩숭덩 잘라냈다.


첫날은 가위 잡는 법을 배우고 빗등 자르기와 빗살 자르기를 배웠다. 가위 잡기 연습하는 데만도 손가락이 마비될 것 같았다. 특히 가위 손잡이에 들어가는 네 번째 손가락은 안 그래도 휘어있는 데 더 휘어질 것만 같았다. 절삭력이 좋은 가위로 머리카락 뭉치가 잘려 나가는 느낌은 종이를 자를 때와는 무척 달랐다. 미용실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일을 직접 해보는 즐거움에 손등이며 손목, 발등이 온통 머리카락으로 뒤덮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여섯 번 수업 후 덥수룩해진 남편을 앉혀놓고 실습을 했다. 그동안 검은색 아니면 갈색 머리만 잘라봤는데 흰머리는 처음이었다. 남편은 심한 곱슬인 데다 가마가 뒤쪽에 있어 그동안 잘라본 가발들과 모류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커트보 대신 세탁소 비닐에 꽁꽁 싸인채 불편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배운 대로 탭을 바꿔가며 클리퍼로 정리하고, 틴닝도 하고, 어려웠던 싱글링까지 마치고 뿌듯하게 사진을 찍어뒀다.


학원에 가서 선생님께 사진을 보여드리니 그동안의 칭찬과는 다르게 표정이 어두워지시며, 가서 다시 잘라주라고 하셨다.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을 다시 알려주시며 천천히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사람마다 머리카락의 양도 굵기도, 가마의 위치도, 난 방향과 모양도 다르다. 그렇게 제각각인 두상의 각도에 따라 길이를 조절하고 개인의 취향까지 맞추어야 하니 정말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남편은 뒷모습을 자주 보는 것이 아니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 금요일에 졸업사진을 찍는 둘째의 머리를 건드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한동안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한 가지 일을 오랜 시간 해온 장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감이 느껴졌다. 어설픈 가위질과 클리퍼로 머리를 잘라보면서 이미용인들의 연습과 수고에 더 감사하게 됐다. 버스 앞자리에 앉은 남자 뒤통수를 볼 때마다 깎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부작용도 생겼다.


해외에서 남편과 아이들 이발비를 아껴보겠다며 시작했지만 사실 수강료에 재료비에 그냥 이발소에 다니는 편이 나았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발을 배우지 않았다면 내가 남편의 머리카락을 빗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있겠는가. 아이들과 미용실 놀이도 실감 나게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쓸모 있는 기술을 익혀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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