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잼 매니저 Feb 09. 2020

제1장. 아이패드를 사게 된 이유

소설. 본능과 충동 그리고 욕구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부질없고 재미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에 부딪히게 되었다. 정지해 있는 차 뒤를 누군가 ‘툭’하고 박은 것처럼 갑작스럽지만 분명하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패드 샀다. 


여기서 확실하게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이 글은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15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순간적인 탐욕으로 써버린 뒤에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죄책감에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기 위하여 쓰인 것이 아니다. 절대로.


내가 아이패드를 산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더 이상.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는 것이고, 나는 그 세상에서 더는 살기가 싫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아이패드를 샀다는 사실이다. 내가 얼마를 썼고 무엇을 샀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즉, 아이패드는 단지 하나의 상징일 뿐이오, 이를 산다는 행위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을 밟고 지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세상은 지금과는 다르게 본능과 충동 그리고 욕구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난 삶들은 끊임없는 인내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뿐이었다. 정겨운 고향을 떠나 외로운 서울 살이를 한 지 어언 10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겠다며 홀로 상경해 고시원 쪽방에서 눈을 붙이고, 노량진 컵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죽어라 공부만 했고, 결국에는 서울 지하철 노선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은 마치 내가 서울대라도 합격한 것처럼 누구보다 기뻐하며 선뜻 1,000만 원의 자취방 보증금을 보내주셨고 나는 국가장학금과 방학 없는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임관하여 2년 4개월에 달하는 복무기간을 채우고서는 그간 악착같이 모은 돈을 가지고 취업 역시 서울에서 하겠다며 이 외로운 곳에 또다시 둥지를 틀었다. 기껏 모아둔 돈을 2%도 안 되는 이자를 받으며 은행에 썩히기 싫었던 나는 초기 정착금을 제외한 3,000만 원을 외삼촌이 다니는 규모는 작지만 튼실한 중소기업 주식에 투자를 했다. 그 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취업 준비와 함께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반년, 일 년 점점 그 기간이 길어지자 점차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허나 시간과 돈이 아까워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진통제를 먹으며 버텨냈다.


굳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것은,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며 폐기되는 도시락 따위를 먹으면 식비를 절약할 수 있겠다는 나름의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도심 생활과는 별개로 취업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서울 끝자락에 있는 학교를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에게 취업의 문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게만 느껴졌다. 서울 취업이라는 희망이 점점 희미 해질 때쯤 처음으로 이름 있는 회사의 최종 면접을 가게 되었다. 사활을 걸고 준비하였으나, 결과는 낙방. 고향으로 내려가 공무원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종 합격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추가 합격 소식이었다. 건강 검진을 받고 결과지를 제출해달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동안 쌓였던 고난과 환희가 뒤섞여 전화기를 붙잡고 목 놓아 울어댔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쩍 안좋아진 건강 상태를 점검할 겸 이것저것 추간 검진을 신청했다. 입사가 거절당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 것은 아니길 바라며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마음을 졸였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그보다 처참했다.


위암 말기, 시한부 인생.


결과를 듣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면서 욕지거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삐져나왔다. 당황하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한 무표정하고 지쳐있는 의사의 얼굴. 겨우 정신을 되찾고 담담한 의사에게 물었다. ‘아직 20대인데 암 말기인 게 말이 되는 것이냐고, 착각하신 것 아니냐고’ 의사는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 지속된 인스턴트 섭취, 극심한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고. 20대에도 충분히 말기 암이 발견될 수 있으며 미만성 위암의 경우 초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빌어먹을 젊음이 암세포의 엄청난 전이 속도의 원인이 된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집 안에 있기를 일주일. 일주일 내내 멍하니 바라보던 티브이에서는 세계 각 국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때마침 뉴스에서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마스크 부족 현상에 대해 떠들어 댔고 문득 나는 외삼촌의 회사가 마스크를 만드는 중소기업임이 떠올랐다. 주식을 확인해 보니 웬걸, 3배가 넘게 올라 내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1억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팔고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남아 있는 삶: 최대 2년.


갖고 있는 돈: 약 1억 원. 


생각지도 못 했던 드라마틱한 시간과 금액.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적인 인생을 꿈꾼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역시 극적인 삶보다는 평범한 삶이 내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위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부모님이 그토록 바라는 것처럼. 바로 그 평범한 삶을 위해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고 인내했던 것인데, 지금 내 눈 앞에는 천사와 악마가 각각 하나씩 두고 간 현실감 없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이걸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 고민되고 고민했다. 그리고 지나온 삶들을 돌아봤다. 복기할수록 후회되고 후회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언제나 미래를 위한 삶이었다. 단 한 번도 그 순간의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 죽음을 목전에 둔 나의 삶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 본능에 따르고 충동을 거스르지 않으며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 나는 그런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 삶의 시작을 알리며 나는 아이패드를 샀다.

작가의 이전글 거실 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