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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Jan 24. 2020

거실 등

 

 까치산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바로 오른쪽을 돌아보면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이 시장을 곧장 지나 골목길 속 주택들 사이의 완만한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정면으로 높게 솟은 아파트가 하나 보이는데 그 아파트가 바로 우리 집이다.


 처음 이사를 갔을 때만 하더라도 그 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르막을 올라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창문 블라인드를 치지 않으면 밖에서 거실과 내 방이 훤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층이 좀 높았다면 신경이 덜 쓰였을 테지만, 2층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오르막과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어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무는 자리에 있었다.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싫었던 나는, 집안에 있을 때면 계절을 막론하고 병적으로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쳤다.


 그런 내게 엄마는 항상 ‘아무도 우리 집에 관심 없으니 환기 좀 시켜라.’라고 잔소리했다. 나는 거실의 창문과 블라인드는 상관없지만 내 방은 절대 안 된다며 엄마에게 맞섰다. 집에서는 거의 팬티만 입고 생활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우연히라도 다른 누군가, 그것도 언제나 마주칠 위험이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엄마와 나는 타협적인 평화를 맞을 수 있었다. 나는 내 방의 창문과 블라인드를 지켜냈고, 엄마는 거실에 있는 블라인드를 아예 없애버렸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걸 지켰다는 만족은 있었으나, 물을 마시러 나갈 때나 거실을 지나야 할 때마다 창밖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에 올라가는 길이었다. 깜깜한 밤, 우뚝 솟은 아파트의 창문들 중 거짓말처럼 우리 집 거실 등만이 켜져 있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가족 중 누군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면 거실 등을 켜놓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블라인드가 없는 우리 집 거실 등만이 은은하게 켜져 있었기 때문일까? 늦게 들어갈 때면 항상 빛났을 불빛인데 그날따라 유독 따뜻하게 느껴져 오르막을 오르다 멈춰 서서 그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나를 기다리다 잠든 사람들이 저곳에 있고, 내가 돌아갈 따스하고 편안한 장소가 있다는 느낌이 나를 감쌌다. 오르막을 채 다 오르기도 전에 다른 집의 불이 켜져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그 순간과 감정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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