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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Jan 13. 2020

꼰대

“제기랄, 꼰대가 대체 뭐냐? 아니 무슨 말만 하면 대체 왜 꼰대, 꼰대 거리는 거야. 짜증 나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말을.”


문도는 독이 바짝 오른 상태로 화장실에 갔다 온 현준이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말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래?”


“아니, 야 들어봐. 그래. 네가 한 번 객관적으로 얘기해 봐라.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


잔에 남아 있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문도는 말을 이었다.


“너 요즘 내가 전역하고 강남에서 토익학원 다니는 거 알지?”


“어어, 그 조별 스터디할 때 이상한 장난쳐서 적응하는데 애 좀 먹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냐? 적응은 좀 했어?”


“처음에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서문도입니다. 고향은 거문도이고요.’했다가 분위기 싸- 해져서 그 날 아무 말도 못 하고 x신처럼 집에 갔었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뒤로 내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눈치 좀 보면서 장난도 치다 보니까 그 스터디하는 애들이랑 다 친해졌단 말이야.”


“크크, 고생하네. 민간 사회 적응하기도 쉽지 않지?”


“말도 마라. 군대 얘기 한 번 했다가 완전 꼰대로 낙인찍혀가지고 이제는 무슨 말만 하면 다 꼰대 꼰대 거려서 말을 못 하겠다니까.”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래?”


윤기가 흐르는 족발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며 현준이 물었다.


“그냥 뭐 군대 있을 때 얘기 조금 했지. 전역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내가 군대 얘기밖에 더 하겠냐?”


“그러니까 무슨 군대 얘기를 했길래 그렇게 꼰대 소리를 듣냐는 거지. 군대 얘기하는데 꼰대 소리 들을 일이 있나?”


문도는 병에 남아있던 소주를 모두 자기 잔에 붓고는 패드를 통해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뭐였지…. 아, 부대 있을 때 소대원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혼낸 얘기 좀 했지 뭐. 근데 갑자기 옆에 있던 20살짜리 남자애가 ‘와, 완전 꼰대네 이형’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장난으로 ‘어디 군대도 안 갔다 온 어린놈이!’라고 받아쳤지. 그랬더니 그때부터 다들 나를 꼰대 취급하는데. 참 나. 이게 꼰대 소리 들을 일이냐?”


“하하, 꼰대 맞네 뭐.”


“인마, 대체 꼰대가 뭔데? 나는 꼰대가 무조건 자기 말이 정답이라고 정해 놓고 상대 이야기는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그러냐?”


“흠, 그건 아니지. 너는 그래도 상대방 이야기를 항상 들으려고 하고 네가 틀렸을 때는 인정도 하니까. 생각이 다른 부분은 존중해주는 것도 있고.”


“후…. 봐라, 아까 너 화장실 갔을 때 단톡 방이다. 아주 말을 못 하겠다.”


문도는 현준에게 핸드폰을 건넨 뒤 족발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때마침 주문한 소주를 직원이 가져다주었고, 문도는 뚜껑을 따서 현준과 본인의 잔에 가득 따랐다.


“와 짜증 날 만하네. 무슨 ‘ㅋㅋㅋㅋ’만 쳤는데도 꼰대라 그러네 크크크.”


“그니까, 내가 짜증이 나냐 안 나냐. 망할. 그 언제냐, 나 임관하기 전에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갑자기 유행하면서부터 조금 감성적인 말만 하면 오글거린다고 했던 거 기억하냐? 완전 그때랑 똑같다니까.”


“아 맞다, 너 그때도 동기들이랑 다 같이 벚꽃 보러 가서 분홍빛 세상 어쩌고 그랬다가 ‘오글거리도’라고 한참 동안 불리지 않았었냐? 크크크크 지금은 꼰도네 꼰도. 하하하”


“야, 그때 그건 여자 친구한테 전화 와서 ”너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세상이 분홍빛이야. “하는 걸 옆에 있던 동기가 듣고 애들한테 다 말해가지고 그렇게 된 거야. 인마, 여자 친구한테 그 정도 말도 못 하냐? 어?”


“어휴, 별명도 많다. 짠이나 하자. 꼰도야. 크크”


둘은 잔을 부딪치고는 한 번에 모두 마신 뒤 현준은 물을, 문도는 콜라를 한 모금씩 마셨다.


“나는 말이야. 형들이나 어른들이 뭐를 알려줄 때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야. ‘커피는 손님부터 주는 거다.’, ‘커피를 줄 때는 윗부분이 아니라 중간 부분을 잡고 드리는 거다.’ 뭐 이런 사소한 것들 말이야. 사실 이런 건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아두면 유용한 거니까. 그리고 이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도 어느 정도 마음이 가야 말해주는 거고 말이야. 근데 요새는 뭘 알려주기만 하려고 해도 꼰대 소리를 들으니 원.”


“음, 그건 나도 몰랐네. 그래서 저번에 김대리가 부장님 손님 오셨을 때 내가 커피 내어 주는 모습 보고 그렇게 쳐다봤구나. 아주 세상 제일 한심한 놈 쳐다보듯이 보던데.”


“너 김대리랑 사이 안 좋다고 했지? 아마 너랑 좀 친했으면 그러고 나서 알려줬겠지. 나도 부대에서 마음이 안 가거나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애들한테는 한 마디도 뭐라 안 했어.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에너지 낭비하기도 싫었거든. 그래서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했지.”


“그래 어떻게 보면 주위에 꼰대가 한 명도 없다는 건 그 사람한테 관심이나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일 수도 있겠네.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라….”


“뭐,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부대에서도 말년 병장보다 자유로웠던 병사는 소위 말하는 폐급 병사였으니까. 안타깝게도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나도 나를 한 번 돌아봐야겠는 걸.”


“에이, 넌 그래도 김대리 말고는 다 잘 지낸다며. 모든 사람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받는 것도 건강한 삶은 아니지 않겠냐?”


“그건 또 그런 것 같네. 흠. 어렵다 어려워.”


“그래, 나 부대에 있을 때도….”


“아이고 꼰도야, 이제 부대 얘기는 그만 좀 하고 술이나 먹자. 어? 지겹다 지겨워.”


현준은 문도의 말을 자르고는 문도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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