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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Nov 01. 2019

대체 왜들 살아가나요

 

 제 할머니로 말하자면요. 8남매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형제가 2명뿐이에요. 할머니를 포함해서요. 할머니가 그러는데, 태어나보니 오빠가 벌써 둘 죽어있더래요. 그 뒤로 할머니 다음에 태어난 동생은 원인도 모르고 죽었대요. 또 어떤 동생 하나는 전쟁이 나서 피난하는 중에 폭탄 소리에 놀라 할머니 품에서 죽었다고 하고요. 막내 동생은 국민학생일 때 머리가 아프다며 자더니 일어나지 않더래요. 그 위에 동생은 아들까지 낳고 살다가 몇 년 전에 암에 걸려서 죽었고요. 그래서 이제 8남매 중에 남아있는 동생이라고는 14살 차이 나는 남동생 하나래요. 결혼을 하고 할머니는 제 아버지를 포함해서 1남 3녀를 낳아 기르셨는데 지금 하나 있는 아들이 60살도 안 돼서 죽을병에 걸려 뼈만 남은 채 병원에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할머니가 아버지를 보더니 울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부모 먼저 보내고, 형제들 먼저 보내고 이제는 자식까지 먼저 보내게 되었다고요.


 죽을병에 걸려 뼈만 남아있는 제 아버지에 관해 말해보자면요. 아버지는 청량리에 있는 홍등가 근처에서 한창 국민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부터 버스에 올라 신문을 팔았대요. 그때부터 해서 철없는 짓도 많이 하고 부모 속도 많이 썩였다고 해요. 아버지 말로는 그래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정신 한번 차려보려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래요. 그래도 기술 하나 배워서 평생 그 기술 하나로 가족 먹여 살리고 낳은 자식들 대학까지 다 졸업시켰어요. 물론, 그 과정이 절대 순탄하지 만은 않았지만요. 근데 진짜 웃긴 건 뭐냐 하면요. 제 아버지가 한번 많이 아팠었어요. 그래서 제가 군대에 있을 즈음해서 이제 저 놈만 전역하면 일 좀 그만해야겠다 싶더래요. 그래서 그때까지만 참고 버티자 했는데 글쎄, 제 전역을 1년도 채 안 남겨놓고 말기 암 판정을 받았지 뭐예요. 기억도 잘 안 나는 처음 10년 빼고 철없이 놀던 그다음 10년 빼고 근 35년을 일만 하다가 죽을병에 걸린 거예요. 이제 좀 여유를 갖고 자식들 결혼하는 것도 보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엄마랑 여행도 좀 하고 하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는요. 베트남 참전 용사이신데요. 거기서 사람도 죽여보고 사람도 살려봤대요. 살려준 사람이 지금 할아버지가 되어서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손주도 있대요. 그분이 아직도 할아버지를 찾아온대요. 살려줘서 고맙다고요. 할아버지의 인생을 또 말해보자면요. 할아버지는 군인을 오래 했는데요. 연금을 못 받아요. 이제 그 이유를 얘기해드릴게요. 할아버지가 군대에 갔을 당시에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았는데요. 글쎄 거기 교관이 “너, 너, 너 하사관 해라.”라고 해서 하사관이 되었대요. 할아버지 말로는 그때는 뭐 그렇게 군인을 시켰대요. 그래서 군인을 하다 보니 베트남에 전쟁도 하러 가고 사람도 살려보고 죽여도 보고 했대요.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상사 계급장 달고 군인을 하는데 원래는 대위 계급이 맡아야 하는 어떤 배의 함장을 임시로 맡게 되었대요. 그래서 최전방 산속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게 되었는데, 글쎄 어느 날 그 배에 있던 한 병사가 지금 잠시 정박해 있는 섬에 약혼자가 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얼굴만 보고 오겠다고 울며불며 부탁을 하더래요.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는데 이 사람이 글쎄 탈영을 해서 그 여자를 찾아가지 않았겠어요. 문제는 뭐냐면요. 이 여자가 다른 남자랑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아마 연락이 안 되었나 봐요. 남자가 그 모습을 보더니 들고 있던 총으로 그만 여자를 쏴버리고 본인도 그 총으로 자살을 했대요. 그 일로 할아버지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20년을 못 채우고 전역을 하게 됐대요. 타의로 군인을 하게 돼서 파병도 갔다 오고 젊음을 받쳤는데 거참.


 이 외에도 이런 구구절절한 얘기는 더 있는데요, 그런 것보다 제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요. 진짜 정말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요. 이런 질문은 제 주위 사람들에게는 할 수 없거든요. 할머니, 아버지,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요? 사람 수만큼 그 이유도 다양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 궁금해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보면요. 사람들이 아등바등 참 열심히도 살아가는구나 싶거든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요. 다들 왜들 그렇게 안간힘을 써가면서 살아가는지 참 궁금해져요. 한명 한명에게 가서 물어보고 싶어요. 대체 왜 그렇게 살아가냐고요. 저요? 물론 저도 아등바등 참 열심히 살았던 때가 있는데요. 그때는 참 분명했거든요 저도. 낭만과 사랑이 삶의 전부였던 때도 있었고요. 목표와 목적이 분명했던 그런 시기도 있었어요. 근데 낭만과 사랑도, 목표와 목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도 다 상황이 허락하고, 돈이 충분히 있고, 능력과 여유가 있어야 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그냥 한없이 덧없고 허망하게만 느껴져요. 왜 수많은 철학자들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이것 참, 이런 걸 주위에 진지하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하는 말인데.


 대체 왜들 살아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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