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그녀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했다. 그 공간에서 그녀들보다 밝은 빛을 내는 건 오직 싸이키조명뿐이었다. 나의 친구 U는 그런 그녀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그곳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힐끗거리며 적당한 타이밍을 재고 있는 중에 말이다. 선수를 빼앗겼다는 조급함과 시기와 호기심이 반쯤 섞인 경쟁자들의 수많은 눈이 뒤를 좇는 U의 뒷모습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렇듯 내 친구 U는 나와는 달리, 행동할 줄 아는 멋진 놈이다. 나는 그동안 J의 널찍한 등에 기대 U와 그녀들을 힐끗거리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U의 뒷모습을 좇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들 중 한 명과 귓속말을 몇 번 주거니 받다가 번호를 받으려는 찰나, U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통화 목록 속 여자친구 이름 옆의 하트를 그녀들 중 한 명에게 보여버린 것이다. 이런 멍청한 놈! 제길! 두근두근 설렌 마음으로 J와 함께 그를 지원하러 다가가던 나는 U를 데리고 J와 함께 다급히 인파 속으로 후퇴해야만 했다.
그녀들이 어둠 속 화려한 조명 아래의 우리를 다시 찾아온 것은, 마침 내가 다른 2명의 이성에게 귓속말을 속삭이던 순간이었다. 나는 새로운 이성 둘과, U와 J는 예의 그 3명의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호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오로지 선택만이 있다고 했던가,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우리 중 한 명을 보내고 나와 대화를 나누던 둘과 함께 나갈 것인지, 아니면 셋이 같이 그녀들과 나가 -이성적 설렘을 기대하기 어려운- 술자리를 가져야 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던 2명의 여자들을 포기하는 것이 정말정말정말 괴로웠지만(좀체 일어나지 않는 일, 두 명 중 귀여운 쪽이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기에 더욱!), 도리가 없었다. 그녀들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이미 U의 얼굴에선 행복이 넘쳐흘렀고, 그 누구도 그의 행복을 뺴앗은 죄악을 저지르는 짓을 한다면 용서받지 못 할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J는 언제나처럼 부처의 웃음으로 뭘 선택해도 좋다고 했으나, 우리의 선택은 그녀들이 우리를 다시 찾아온 시점에 정해져 있었다.
나의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상황과 환경이 나에게 시련을 준다. 강력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쟁취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단 하루의 즐거움조차 시련을 이겨내지 못 하면 얻어낼 수가 없다. 제길, 제길!! 이번에도 나는 언제나처럼, 쟁취하지 못한 채 상황과 환경의 시련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세상이여, 제가 또 졌습니다, 또!
그녀들은 오랜 친구처럼 죽이 잘 맞았고, 여자친구 몰래 놀러 온 U를 먹잇감으로 짓궂은 장난들을 쳤다. 그런 와중에도 U는 꿋꿋하게 자기 스타일의 그녀1에게 어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 내 스타일인데? 그니까 말 걸었지. 짠 할까? …”
진짜, 진짜로 멋있는 친구다. 인생은 U처럼 상황이고 뭐고 쟁취해야만 하는 거라고, 그래야만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나는 U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으며, 행동하고 쟁취하지 않으면 평생 상황에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을 뿐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나처럼.
소주 3병이 빈 병이 될 즈음, 단발머리의 그녀3과 U는 어느새 모종의 거래를 바탕으로 친밀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U는 그녀3에게 회사의 정말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줄 것을, 그녀3은 U가 헤어지면 그녀1의 번호를 전해줄 것을, 약속했다.
나는 속이 뒤틀렸다. 그녀2가 은근히 J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U는 그녀1에게 호감을 표시하면서 그녀3과의 모종의 거래를 바탕으로 친밀한 사이가 되어가는 중에 병풍 혹은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로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수십 번은 더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했던 나의 부탁은 듣는 둥 마는 둥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으면서 처음 만난 그녀3에겐 너무나 쉽게 주선을 해주는 U의 모습에 그랬다기보단,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되어버렸다. 소주가 아닌 하이볼을 혼자서 홀짝이고 안주는 입에도 대지 않았음에도, 속이 뒤틀려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눈치 빠른 U와 단발머리 그녀3은 조심스럽지만 예리한 눈으로 나를 살피더니, 고맙게도 빠르게 자리를 파해주었다. 하지만 곧,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그녀1과 그녀2는 아는지 모르는지 화장실에서 가장 먼저 나온 내게 왜 J는 그녀2에게 번호를 묻지 않는지 해맑게 물어왔기 때문이다. 내게 말이다, 내게! 나는 다시 메스꺼움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그 순간을 견뎌낼 수가 없어, 당황한 얼굴을 한 그녀들을 뒤로하고 말이다.
별이 빛나는 밤, 나는 홀로 빛이 없는 어둠 속으로, 도망치고 도망쳤다.